1933 심양, 장마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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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여잔 여진족이잖아

녀석의 목소리가 다시 머리를 맴돈다. 지금 몸에 맺힌 땀방울처럼 끈적하고 불쾌하게 두뇌에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다. 내게 진지한 장난은 치지 않던 녀석이니 분명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며 한 말일 것이다. 그 여잔 다른 족속인데 정말 괜찮은 거냐고. 내 다릴 붙들고 머리를 천천히 움직이는 그녈 보았다. 자길 쳐다보는 눈길을 느꼈는지 올려다 보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여인인데.

정혁씨랑 무슨 일 있었어요?

내 아래에서 그녀가 물었던 말에 대답하지 않았었다. 녀석과 헤어진 지 이틀이나 지났는데도 내 표정이 좋지 않았나 보다. 지금도 내 얼굴을 보고는 입을 때고 올라와 옆에 눕는다. 그 녀석 앞에서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간간이 서신으로 전보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 잠시 요양에 들릴 일이 있으니 얼굴이라도 보자 했다. 수년 만에 만난 자리라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며 즐거웠었다. 내가 결혼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그랬다.

당신하고 결혼한다고 했어

이 여자는 왜 갑자기 만주어냐며 흘긴다. 내 여자의 일이라 내 여자의 말이 나온 걸까? 그렇게 하는 수 없이 조금씩 전부 이야기했다. 그래도 그 녀석이 한성에서 지내더니 사람이 바뀌었다는 말은 쉽게 꺼내긴 힘들었다. 그 말에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 진다. 조선 사람은 모두 그게 무슨 말인지 안다.

어렸을 땐 모두 함께 놀았는데. 녀석이 대학 시절 반년 가까이 쫓아다닌 여학생도 만주인이지 않았나. 그런데 이젠 그들을 기분 나쁘다는 듯이 여진족이라 부르고 있는 모습에, 그걸 친구 앞에서 숨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답답해진다.

앞으로 괜찮을까요?

아니. 아마도 좋지 않겠지. 팔에 닿은 그녀의 가슴이 조금은 떨린 것 같았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이랬다. 남을 더 걱정하는 사람. 나를 더 걱정해주는 여자. 심요(瀋遼)의 수많은 사람 중에 내가 마음을 주는 한 여자. 지금 내가 친우와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을 것을 자기 탓으로 여기는 걸까. 그녀를 끌어당기며 몸을 맞댄다. 땀방울이 하나가 된다. 아니야, 예러. 당신은 아무 잘못 없으니까 이 이상은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않겠다 말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