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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교 &#8211; Josephology 10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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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교 &#8211; Josephology 10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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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즘 생각은 이렇습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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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7 Jul 2018 12:25:14 +0000</pubDate>
		<dc:creator><![CDATA[Joseph]]></dc:creator>
				<category><![CDATA[미분류]]></category>
		<category><![CDATA[기독교]]></category>
		<category><![CDATA[페미니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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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지난 시험기간 중에 떠올린 생각을 기록합니다: 제가 여성신학을 보는 입장이 조금 변했습니다. 좀 다르게 말해야겠네요. 여성신학의 전개를 보며 기독교에 대한 전체적인 생각이 변하고 있습니다. 이 생각이 또 바뀔진 모르지만 기록은 소중하죠. 저는 우리의 신을 믿고 따르는 이 종교가 충분히 변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어찌되었든 신은 사랑이니까요. 인간이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얼마전부터는 다른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지난 시험기간 중에 떠올린 생각을 기록합니다:</p>
<p>제가 여성신학을 보는 입장이 조금 변했습니다. 좀 다르게 말해야겠네요. 여성신학의 전개를 보며 기독교에 대한 전체적인 생각이 변하고 있습니다. 이 생각이 또 바뀔진 모르지만 기록은 소중하죠.</p>
<p>저는 우리의 신을 믿고 따르는 이 종교가 충분히 변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어찌되었든 신은 사랑이니까요. 인간이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p>
<p>하지만 얼마전부터는 다른 방향에서 보고 있습니다. 결국 이 종교는 고쳐 쓸 수 없는 것 아닐까 하고요. 아무리 신학을 고민하고 전개해도 경전은 시스젠더 남성만 인간으로 여기는데 말이죠. 우리가 하는 고민이란게 전혀 바뀌지 않는(그리고 바뀌지 않을) 경전에 새 해석을 가하는 것뿐이라면, 굳이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자기만족에서 끝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신앙 때문에 진짜 건드려야 할 건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p>
<p>인터넷에서 다시 찾지 못하고 있지만 어느 무슬림 페미니스트의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기는 누구보다 신을 사랑하는데 신이 주신 규율에서는 자신과 같은 여성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을 때 대체 어떡해야 하냐는 말이었습니다. 그 글을 읽었을 때도 아찔했지만 지금은 그 말에서 무슬림을 크리스천으로 바꿔도 가능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 아찔합니다. 많은 분들의 투쟁 덕분에 우리는 다행히 이웃 종교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대놓고 하고 있지 않을 뿐 비슷한 &#8212; 같은 사상이 이 종교 안에 깔려있지 않습니까? 대놓고 하기도 하죠. 부끄럼도 없이. 그리고 그 근거는 모두 어디에 있나요.</p>
<p>일상적으로 절 아는 지체들은 제가 가끔씩 얘기하던 걸 기억하겠죠. 교회가 무너지는게 기독교가 살 길이라는 말. 이건 그 지점에서 더 나아간 생각입니다. 교회는 문제가 맞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수정되지도 않는 경전에 있습니다.</p>
<p>물론 그 경전 덕분에 교회가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근세의 변혁은 계속해서 교회 밖에서 시작됐고, 교회는 텍스트에 묶여 그 끝자락에서야 겨우 뒤따라왔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경전 때문에 교회가 있어왔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단지 없어져야 했을 존재가 산소호흡기를 달고 그걸 애지중지해온 것은 아닐까요.</p>
<p>방금도 저는 버릇처럼 기도했습니다만, 제가 기도한 신이 저 경전이 말하는 신과 같은 신일까요? 모르겠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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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럼에도 도망치면 안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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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2 May 2016 13:45:15 +0000</pubDate>
		<dc:creator><![CDATA[Joseph]]></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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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기독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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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처음엔 기독교인이었다. 기복신앙을 쫓는 자들과 구별하기 위해 크리스천이란 이름으로 도망갔다. 그 다음엔 번영주의에 물든 자들과 구별한다고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으로 도망갔다. 그렇게 이름을 지키지 않은채 헛된 순수함만을 찾아 분열하는 동안 힘을 잃고 순수함도 잃었다. 작년 5월 즈음에 적어둔 글이다. ‘구별됨’을 잘못 사용할 때 어떻게 되는지 고민하다 떠오른 것으로 기억한다. 이 나라 기독교가 혐오를 내재한 요즈음, 스스로를 기독자라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blockquote><p>
  처음엔 기독교인이었다. 기복신앙을 쫓는 자들과 구별하기 위해 크리스천이란 이름으로 도망갔다. 그 다음엔 번영주의에 물든 자들과 구별한다고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으로 도망갔다. 그렇게 이름을 지키지 않은채 헛된 순수함만을 찾아 분열하는 동안 힘을 잃고 순수함도 잃었다.
</p></blockquote>
<p>작년 5월 즈음에 적어둔 글이다. ‘구별됨’을 잘못 사용할 때 어떻게 되는지 고민하다 떠오른 것으로 기억한다. 이 나라 기독교가 혐오를 내재한 요즈음, 스스로를 기독자라 부르기가 참담했다. 신의 이름으로 남을 죽이고 싶은 자들과 같은 이름표를 달아야 하다니.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일이니. 하지만 이젠 그 혐오가 싫다고 도망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도망쳐서 무엇이 남을까? 위의 생각처럼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도망치면 도망칠 수록 혐오자들만 남아 <strong>모든</strong> 기독교를 더럽힐 것이다. 그들은 신의 말씀을 입맛에 맛게 이용하며, 자신들이 판단의 주권을 가진듯이 말한다. 그렇게 놔둬서는 안된다. 이 종교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옛날에 행했던 너무나 큰 잘못들을 바로잡고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여호와와 예수의 말을 전하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지금도 모든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예전의 잘못들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된다. 복음이 다시는 살해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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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성 혐오로 가득찬 총신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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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9 Feb 2016 13:10:08 +0000</pubDate>
		<dc:creator><![CDATA[Joseph]]></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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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뉴스앤조이에 올라온 이용필 기자의 기사이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김 총장은 &#8220;개혁주의 신학에서 여성 안수는 안 된다&#8221;, &#8220;여성 안수라는 보루가 무너지면 성경적 신앙의 보루가 무너진다&#8221;, &#8220;성경에 &#8216;여자는 잠잠하라&#8217;, &#8216;남자를 가르치거나 다스리지 말라&#8217;고 나와 있다&#8221;고 발언했다. 또, &#8220;보수 정통 개혁파는 여성 안수를 반대한다. 자유주의 진영에서나 여성 안수를 허용한다&#8221;고 말했다. 설교를 들은 한 참석자는 &#8220;전형적인 여성 차별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2131">뉴스앤조이에 올라온 이용필 기자의 기사</a>이다.</p>
<blockquote><p>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김 총장은 &#8220;개혁주의 신학에서 여성 안수는 안 된다&#8221;, &#8220;여성 안수라는 보루가 무너지면 성경적 신앙의 보루가 무너진다&#8221;, &#8220;성경에 &#8216;여자는 잠잠하라&#8217;, &#8216;남자를 가르치거나 다스리지 말라&#8217;고 나와 있다&#8221;고 발언했다. 또, &#8220;보수 정통 개혁파는 여성 안수를 반대한다. 자유주의 진영에서나 여성 안수를 허용한다&#8221;고 말했다.</p>
<p>  설교를 들은 한 참석자는 &#8220;전형적인 여성 차별 발언이었다. 들을수록 화가 나 밖으로 나갔다&#8221;고 말했다. 기도한 A 씨는 송년회 다음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8220;나는 오늘부로 총장님 눈에 확실히 찍혀 다음 학기부터 총신에서 강의하기 힘들 것 같다&#8221;는 글을 남겼다.</p>
<p>  말이 씨가 된 것일까. A 씨가 맡고 있던 수업은 폐강되거나 다른 강사로 교체됐다. &#8216;구약 원문 강독&#8217;은 폐강됐고, &#8216;시편&#8217; 강의는 다른 강사로 바뀌었다.</p>
<p>  여성을 주제로 한 과목도 영향을 받았다. 총신대 교양 수업 &#8216;현대 사회와 여성&#8217;은 개설이 유보됐다. 평생교육원 수업 &#8216;한국 사회와 여성 문제&#8217;는 폐강됐다. 두 수업을 맡고 있는 B 씨는 &#8220;수업 계획서까지 제출했는데 2월 19일 폐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수 기도 불똥이 여성 관련 수업까지 튀었다. 사실상 이번 학기에는 &#8216;여성&#8217;과 관련된 수업은 없다&#8221;고 말했다. B 씨가 맡고 있는 또 다른 수업 &#8216;칼빈주의와 신앙&#8217;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p></blockquote>
<p>총신대는 &#8216;하나님의 이름으로&#8217; 여성도 혐오하고, 성소수자도 혐오하는 곳이다. 정말 혐오스러운 대학이다.</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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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국과 유럽의 종교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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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1 Feb 2016 14:19:28 +0000</pubDate>
		<dc:creator><![CDATA[Joseph]]></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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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기독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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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The Cresset에 올라온 Gregor Thuswaldner와 Peter Berger의 대담의 일부이다. 주제는 Peter Berger의 &#8216;내 관점은 어떻게 변하였는가?&#8217;이고, 인용한 부분은 Thuswaldner가 왜 유럽은 예외적으로 다른 지역과 달리 종교적이지 않은지 물은 것에 대한 대답이다. 인용은 271828님이 번역한 글에서 가져왔다. [&#8230;] 여기서 모든 내용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로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를 꼽을 수 있을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thecresset.org/2014/Lent/Thuswaldner_L14.html">The Cresset에 올라온 Gregor Thuswaldner와 Peter Berger의 대담의 일부</a>이다. 주제는 Peter Berger의 &#8216;내 관점은 어떻게 변하였는가?&#8217;이고, 인용한 부분은 Thuswaldner가 왜 유럽은 예외적으로 다른 지역과 달리 종교적이지 않은지 물은 것에 대한 대답이다. 인용은 <a href="http://271828.egloos.com/1163372">271828님이 번역한 글</a>에서 가져왔다.</p>
<blockquote><p>
  [&#8230;] 여기서 모든 내용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로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개혁, 루터, 가톨릭, 정통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기독교 종파는 국가 공인 교회가 되었던 역사가 있다. 반면에 미국은 일부의 반대를 무릎쓰고 다원주의를 선택했다. 처음에는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청교도들이 퀘이커 교도를 교수대에 메달았다. 하지만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은 너무 많았고 그들 모두를 교수형에 처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모두를 개종시킬 수도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다원주의를 채택하게 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국가가 국교회를 둔다면 국민들의 태도는 어떻게 바뀔까?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밀접하다면 사람들은 국가에 실망할 때마다 교회에도 실망하게 될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데 이는 국가와 교회 모두에게 좋지 못한 일이다. [&#8230;]
</p></blockquote>
<p>이걸 읽으며 기독교와 권력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지금의 필요로 권력과 가까워지면 나중에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치룰 것이다. 가톨릭이 보다 나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때가 권력을 쥐고 있던 시대인지 권력을 내려놓은 전후의 세계인지 잊지 않아야 한다. 항상 기독교 정당의 꿈을 꾸는 개신교나 정권의 입맛에 맞는 말을 하기 시작하는 가톨릭이나, 한국 교회는 그런 망상을 버렸으면 좋겠다. 영원한 교회는 지상을 탐할 때 자신의 영원을 잃는다.</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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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성 목회자를 불허하는 이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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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2 Oct 2014 06:48:15 +0000</pubDate>
		<dc:creator><![CDATA[Joseph]]></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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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기독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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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에서 여성에게 목회 안수를 안주는 이유는 그들이 여성을 같은 사람으로 안보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사회적인 이유를 들어 목회자로 인정하지 않는 건 소극적인 핑계고, 신학적인 이유로 안수를 거부하는 건 가만히 계시던 하나님을 끌어들여 적극적으로 남성 중심의 교회 권력을 유지하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차별에 침묵하거나 교역자들은 이 더러운 권력욕에 편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에서 여성에게 목회 안수를 안주는 이유는 그들이 여성을 <em>같은 사람으로 안보기 때문</em>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사회적인 이유를 들어 목회자로 인정하지 않는 건 소극적인 핑계고, 신학적인 이유로 안수를 거부하는 건 가만히 계시던 하나님을 끌어들여 적극적으로 남성 중심의 교회 권력을 유지하려 하는 것이다.<br />
그리고 이런 차별에 침묵하거나 교역자들은 이 더러운 권력욕에 편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 대부분은 머릿속이 이미 그 논리에 충분히 젖어서 &#8216;나는 목사, 저 여자는 전도사&#8217;라는 정의를 당연하게 여기기에 반대하거나 반대할 의사조차 갖지 않는다. 그럼 겉으로는 가만히 있지만 마음 속에선 가증스러운 신학적 논리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바로 미래에 당신의 목회자가 될 사람들이다. 총체적으로 노답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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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과거에 사는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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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7 Mar 2014 03:38:31 +0000</pubDate>
		<dc:creator><![CDATA[Joseph]]></dc:creator>
				<category><![CDATA[미분류]]></category>
		<category><![CDATA[기독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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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개혁주의 학교에서 배우고 개혁주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보니 가끔, 아니 자주 마주하게 되는 모습들이 있다. 그건 바로 사람들이 과거에 살던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모습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런데 어느 한 지점, 어느 생각들에 이르면 갑자기 16세기 사람처럼 사고한다. 게다가 조선인의 사고방식도 아닌 스코틀랜드인처럼 생각하는데 이쯤되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더 신기했던 건 이 모습을 보이는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개혁주의 학교에서 배우고 개혁주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보니 가끔, 아니 자주 마주하게 되는 모습들이 있다. 그건 바로 사람들이 과거에 살던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이다.</p>
<p>대부분의 모습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런데 어느 한 지점, 어느 생각들에 이르면 갑자기 16세기 사람처럼 사고한다. 게다가 조선인의 사고방식도 아닌 스코틀랜드인처럼 생각하는데 이쯤되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p>
<p>더 신기했던 건 이 모습을 보이는 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점은 학부생 시절 스무한살 대학 2학년생과 이야기하면서 그에게서 나이 든 장로교도의 모습을 봤을 때 확실히 느꼈다. 단 세 살 차이였음에도 그와 나 사이의 간격은 세기를 가로지르듯이 느껴졌었다. 또 이런 적도 있다. 한 20대 중반의 여성이 자신이 일하고 있는 직장과 이후의 커리어에 대해서 뜨겁고 확고하게 이야기하셨다. 직종만 조금 달랐다면 사업을 시작하셔도 괜찮아 보이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결혼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녀는 결혼하면 그 모든 걸 그만두고 남편을 내조하며 살겠다했다. 여기까지야 자신이 그렇다는데 그렇구나 했었다.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고. 그런데 덧붙이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8220;하나님을 믿는 여자는 당연히 그래야죠.&#8221; 거기서 왜 하나님이 나오고 &#8217;당연&#8217;이란 말이 나와야하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p>
<p>그래서 요새 교회와 나 사이에 있는 거리감을 제일 크게 느끼는 부분이 이것이다. <em>왜 보수기독교인은 과거를 살아가는 것일까.</em> 그냥 과거도 아닌 16-17세기 서유럽이라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이다. 이것이 칼뱅의 제네바에 대한 페티시즘으로 보이기까지 하면 과한 걸까.</p>
<div class="note">
  덧붙임. 그동안 교회와 나 사이에 놓여있는 문제들을 두고 생각을 많이 해보았지만 내 분야의 지식은 물론이고 내 분야가 아닌 지식들까지 공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결론을 내린 것은 많지가 않다. 안다, 이거 다 변명이다. 요즘에 든다는 위의 생각도 그렇다. 이 생각에서 더 나아가서 근대주의 이후 사조들에 대한 공포 같은 것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할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원래 이런건 사석에서 안주거리 삼아 논할 이야기거리인 듯하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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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 더 크게 말씀해주세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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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3 Feb 2014 14:11:32 +0000</pubDate>
		<dc:creator><![CDATA[Joseph]]></dc:creator>
				<category><![CDATA[미분류]]></category>
		<category><![CDATA[기독교]]></category>
		<category><![CDATA[책읽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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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고 확신할 때라도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스티브 슐츠가 쓴 신앙서적. 답답한 마음에 제목만 보고 집어든 책이었다. 지금도 나에게 말씀하고 계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영적으로 예민해지고 그 말씀을 가로막거나 무시하려 하는 단단해진 마음을 무너뜨려야 한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나를 드려야 한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class="embedded-image-link" src="https://dl.dropboxusercontent.com/s/pwt5m87cw6cw81n/book-challenge-01.jpg"></p>
<blockquote><p>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고 확신할 때라도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p></blockquote>
<p>스티브 슐츠가 쓴 신앙서적. 답답한 마음에 제목만 보고 집어든 책이었다. 지금도 나에게 말씀하고 계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영적으로 예민해지고 그 말씀을 가로막거나 무시하려 하는 단단해진 마음을 무너뜨려야 한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나를 드려야 한다.</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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