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렛저널 실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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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부터 펜과 노트로 다이어리를 쓰는 분들을 부러워해왔다. 그게 일기던, 일정관리던 손으로 직접 쓰며 정리하는 이들을 보며 나도 저러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왔다. 가만히 생각만 했던 건 아니다. 몇번이고 다이어리를 사서 시도해보았고 당연히 실패해왔다. 나같은 사람에게 ‘연말연초 다이어리 열병’이 얼마나 큰 병이었는지는 뻔한 일이다. 어려서부터 손보다 컴퓨터로 쓰는게 익숙해지니 커서도 손으로 쓰는게 쉬울리 없는 것이다. 게다가 시대가 좋아져서 일정도, 메모도, 글도 클라우드로 올려 어디에서도 편집을 해야 마음이 편해지는데 말이다.

그러다 불렛저널이란 걸 발견했다. 영어로 Bullet Journal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불렛저널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불렛저널에 대한 설명은 따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어쨌든 며칠간 시간을 들여 살펴본 결과 디지털로도 할 만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다시 며칠간 고민하며 — 고민 너무 한다 — 원노트에 ‘기록 일지’라는 걸 꾸려보았다. 난 원노트를 쓰지만 에버노트를 이용해 쓰는 분들의 후기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

정말 열심히 썼다. 각 항목의 상태를 표시하는 Bullet들도 착오를 거치면서 정해나갔다. 중요 시간마다 잊지 않고 내용을 확인했고 자기 전에는 하루를 마감하고 내일을 준비하며 기록했다. 덕분에 해야할 일들을 잊지 않고 넘길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덤으로 딸려온 효과이지만 일기마저 꾸준히 쓸 수 있게 됐다. 사실 가장 큰 장점은 이로 인해 내가 만족을 느꼈다는 점일 것이다. 드디어 나도 이러고 있어! 나도!

그렇지만 거기까지였다. 아이고. 저널에 계속해서 기록해 나가기엔 내 일상에 기록할 것이 많지 않았다. 학업이 있는 것도, 계속 무언가 기록해야 할 정도로 업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굳이 이렇게 써야하나 싶어졌다. 일정과 저널이 이원화 돼있는 것도 문제였다. 아웃룩에 일정을 입력하고 저널에도 쓴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알림 기능이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어떤 기록은 특정 시간에 알려주면 좋겠는데 그러기 위해선 결국 분더리스트 같은 다른 앱을 써야만 했다. 에버노트엔 알림이 있다는 것 같은데 난 원노트니까.

처음엔 별거 아닌 것 같던 단점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갔고, 결국 불렛저널을 조금씩 다른 앱으로 대체하게 되면서 — 아니다, 원래 쓰던 앱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기록 일지’에는 들어가지 않게 됐다. 원노트는 다시 큰 기록 위주의 용도로 돌아간 것이다. 지금은 아웃룩과 분더리스트에 기초해서 생활하고 있다.

이렇게 내 불렛저널 적용기는 실패로 끝났다. 이건 아날로그를 동경하던 사람이 결국 디지털을 떠나지 못했다는 흔한 이야기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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