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영화장정의 시작

오늘부터 거의 2주에 걸쳐 영화를 몰아쳐 보는 기간이 시작됐다. 주로 부천영화제이고, 그 전에 충무로영화제에서 한 편, 일반 극장에서 세 편을 본다. 부천영화제는 고민하다가 가기로 하였다. 아래를 보면 매일 빠짐없이 영화를 보는 스케쥴이지만 하루나 이틀 정도는 일정을 비울 것 같다. 다른 일정이 있기도 하고, 내 체력이 매일 같은 부천행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해서 그렇다.

요즘 생각은 이렇습니다.

지난 시험기간 중에 떠올린 생각을 기록합니다:

제가 여성신학을 보는 입장이 조금 변했습니다. 좀 다르게 말해야겠네요. 여성신학의 전개를 보며 기독교에 대한 전체적인 생각이 변하고 있습니다. 이 생각이 또 바뀔진 모르지만 기록은 소중하죠.

저는 우리의 신을 믿고 따르는 이 종교가 충분히 변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어찌되었든 신은 사랑이니까요. 인간이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얼마전부터는 다른 방향에서 보고 있습니다. 결국 이 종교는 고쳐 쓸 수 없는 것 아닐까 하고요. 아무리 신학을 고민하고 전개해도 경전은 시스젠더 남성만 인간으로 여기는데 말이죠. 우리가 하는 고민이란게 전혀 바뀌지 않는(그리고 바뀌지 않을) 경전에 새 해석을 가하는 것뿐이라면, 굳이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자기만족에서 끝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신앙 때문에 진짜 건드려야 할 건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인터넷에서 다시 찾지 못하고 있지만 어느 무슬림 페미니스트의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기는 누구보다 신을 사랑하는데 신이 주신 규율에서는 자신과 같은 여성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을 때 대체 어떡해야 하냐는 말이었습니다. 그 글을 읽었을 때도 아찔했지만 지금은 그 말에서 무슬림을 크리스천으로 바꿔도 가능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 아찔합니다. 많은 분들의 투쟁 덕분에 우리는 다행히 이웃 종교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대놓고 하고 있지 않을 뿐 비슷한 — 같은 사상이 이 종교 안에 깔려있지 않습니까? 대놓고 하기도 하죠. 부끄럼도 없이. 그리고 그 근거는 모두 어디에 있나요.

일상적으로 절 아는 지체들은 제가 가끔씩 얘기하던 걸 기억하겠죠. 교회가 무너지는게 기독교가 살 길이라는 말. 이건 그 지점에서 더 나아간 생각입니다. 교회는 문제가 맞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수정되지도 않는 경전에 있습니다.

물론 그 경전 덕분에 교회가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근세의 변혁은 계속해서 교회 밖에서 시작됐고, 교회는 텍스트에 묶여 그 끝자락에서야 겨우 뒤따라왔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경전 때문에 교회가 있어왔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단지 없어져야 했을 존재가 산소호흡기를 달고 그걸 애지중지해온 것은 아닐까요.

방금도 저는 버릇처럼 기도했습니다만, 제가 기도한 신이 저 경전이 말하는 신과 같은 신일까요? 모르겠습니다.

2018년 6월에 본 영화들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2018
쥬라기 월드 1편이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아서 보러 가면서도 내심 걱정이 들었다. 이슬라 누블라의 화산이 터진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그럼 앞으로 월드는 어떻게 되는건지 우려도 되고 말이다. 하지만 〈잃어버린 세계〉의 토대 위에 세운 이 영화는 그런 걱정과 우려를 충분히 날려주었다. 저택 장면은 옛날 작품들에서 랩터에게 추격 당하던 부분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이 감독의 전작은 하나도 본 것이 없지만 스페인 출신 감독들이 이런 호러를 잘 다루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어두운 실내에서 인물들을 쫓아오는 지능이 높은 공룡. 쥬라기 시리즈가 잘 다루고 잘 다룰 수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말콤 박사의 말과 함께 펼쳐지는, 말 그대로 ‘쥬라기 월드’가 되는 장면들은 이거야말로 팬들이 기다리던 장면들이 아니었을까, 〈잃어버린 세계〉의 샌디에이고 사태만으로 충분치 않았던 마음을 적셔주는 멋진 선물이었다. 이제 월드도 한 편만을 남겨두고 있는데 어떤 이야기가 그려질지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