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미개한 사회

미디어오늘의 기사“게이라고? 성관계 사진으로 증명해봐”이다.

신장 178센티미터에 체중 70킬로그램. ‘늘 밝고 유난히 사교성이 좋은 아름답고 건강한 아이’였던 A씨는 군 입대 8개월 만에 “지금 자살을 하겠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싶어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아버지에게 “나를 벌레취급해서 사람들을 피해 종일 화장실에 숨어 있는데,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죽음을 통해 평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A씨는 게이다.

아들의 신변을 염려한 아버지는 ‘아들의 모든 것’을 적은 부형의견서를 부대로 보냈다. 그런데 이 문건을 지휘관은 물론 같이 훈련받던 모든 장병들이 보게 됐다. 이후 군은 그에게 강제로 에이즈 검사를 받게 했다. 동성애자임을 증명하면 현역부적합대상자로 제대를 할 수 있다며 성관계 사진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그 사진도 군 내부 관계자들이 ‘공유’했다.

대한민국에서 생물학적으로 남성이고 신체에 이상이 없으면 군 입대를 해야 한다. 이는 적지 않은 성소수자가 군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군대 내 성소수자 피해사례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피해사례 증언 자체가 또 한 번의 ‘아웃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대 내 성소수자 문제가 무지와 무관심의 영역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에는 비수술 트랜스젠더에 대한 병역면제 취소 처분이 문제가 됐다. 자신을 여성이라 인식하는 B씨는 9년 전 ‘성 주체성 장애’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당시 그는 호르몬제 투여와 정신과 진단 등을 근거로 제출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지방병무청은 별도의 병역기피사건을 수사하던 중 B씨를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그러고는 B씨의 병역면제가 ‘객관적’으로 증명됐을 때만 가능하다며 병역면제를 취소했다.

동성애자는 에이즈 환자일 것이라는 편견, 그들의 섹스는 모두가 돌려봐도 된다는 생각, 타인의 성 정체성을 객관적으로 확인해보겠다는 오만. 이건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군대가 사회의 미개한 부분들이 뒤섞이는 곳이라 쉽게 보일 뿐이지 이 나라는 성소수자를 향해 관음증과 비웃음을 숨기지 않는다.

내 역사관은 이렇다.

“인식의 진보-도구의 발전-인성의 정체.”

공부하기 게으른 사람이라 이런걸 뭐라 부르는지도 모르고 학계에서 어떻게 논의되는지도 알지 못한다. 어쨌든 저기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인성의 정체’. 처음으로 지구라트를 건설했을 때나 지금이나 인성에 큰 다름이 없다는 것. 이런 시각에 따라 사건을 보다보면 사람들이 말세라는 말을 꺼내는 일에 대해 별 감흥이 들지 않는다. 그런 일들은 옛날부터 그랬던 일이거나, 그것이 말세라면 우리는 대충 8,528만 7,132번째 탄생된 지구에 살고 있는 것이거나, 혹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이 이상의 일들이 빈번히 일어난다는 걸 알지 못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