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 하늘이 이랬다. 그래도 하늘이 이런 덕분에 아주 덥지도 않은 좋은 기온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9월의 교토는 내게 아직 땀이 나는 계절이라 이게 나았다.
치쿠린竹林까지 가는 길은 정말 여행객이 떠올릴만한 일본 거리의 모습이다. 게다가 여긴 유명한 관광지잖아? 그러니 더욱 예쁠 수 밖에. 가는 길에 젓가락 파는 가게가 있어서 각자 기념품으로 구입했다. 저렴한 젓가락부터 이렇게 비쌀 이유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가격이 붙어있는 젓가락까지 무척 다양하게 있었다. 여기선 젓가락에 이름을 새길 수 있어서 나는 우리 가족에 맞춰 구매했다. 가족 이름의 한자를 확인하느라 라인으로 물어보고 바빴다. 게다가 일본에서 잘 안쓰는 한자가 있다보니 네이버 일본어 사전에서 찾아 직원에게 보여주고 나서야 제대로 새길 수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은 한자로 썼지만 내 이름은 한자가 아니니 영어로 썼다. 혼자만 영어 이름이네.
치쿠린은 대나무가 이렇게 많았다. 담양 죽림원을 다녀와본 친구는 거기보다 대나무가 많다고 했다. 여행 후에 나도 죽림원을 다녀왔는데 정말 치쿠린이 훨씬 울창하더라. 빼곡한 대나무숲 한가운데를 걷는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상쾌한 기분이라기보다는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기계장치가 잘 맞아 돌아가는 걸 지켜보는 느낌과 비슷했다. 보면서 흡족해지는 그런 기분. 근데 자연을 보면서도 기계를 떠올리다니….
치쿠린 안에 있는 노노미야 신사는 인연에 관한 신이 모셔져 있는 곳이라고 한다. 비슷한 걸 모시는 다른 신사들과 다른 점이라면 겐지모노가타리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11세기 소설에 등장할 정도니 최소 1천년이 넘은 신사다. 참 대단하다 싶다.
친구들은 여기서도 모기에게 고생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치쿠린의 끝 — 같아 보이는 곳 — 까지는 갔다왔다. 노노미야 신사 앞에선 인력거 모는 사람들이 있어서 저렇게 타고 둘러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찍고 말이지. 친구들과 우산 놓고 찍기도 하고 둘러보던 다른 외국인에게 부탁해서 사진도 찍고, 재밌었다. 그리고 나는 긴바지를 입어서 모기에 하나도 물리지 않았다.
참, 아라시야마에는 큰 다리가 하나 있는데 도게츠교渡月橋라 불린다. 달을 건너는 다리라니 기막히게 훌륭한 이름을 붙여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