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중에 잃어버린 아이폰을 대신에 한동안 루미아 920을 들고 다녔다. 지금은 죽어버린 운영체제인 윈도우폰8으로 돌아가는 녀석이다. 내가 갖고 있는 기기는 화면도 깨져있고 배터리도 금방 닳고 무엇보다 통화도 제대로 안됐다. 그래도 텔레그램도 되고 라인도 되니 없는 것보단 나았고 덕분에 외출 시엔 아이패드도, 디지털 카메라도, 무려 3세대 아이팟 나노도 들고 다니게 됐다. 클릭휠 아이팟 나노라니, 고대의 영웅이 깨어난 것도 아니고. 어쩌다보니 2000년대로 돌아간 것이다. 그리곤 점점 이대로는 안되겠다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사실 이 생활도 아주 나쁘진 않았기에 다음 아이폰이 나올 10월이나 11월까지 지내보려 했다. 라인이 윈도우폰8용 서비스를 그만둘 것이라는 공지를 보기 전까진 말이다. 카카오톡이 윈도우 스토어에서 철수한 후 가까운 사람들에겐 라인을 쓰자는 부탁을 하고 그걸로 연락하고 있었는데 이게 끝난다면 좀 많이 곤란했다. 그리고… 트위터를 도저히 못해먹겠던 것도 한몫했다.
다만 내가 생각한 예산의 상한은 5만원이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는 썩 괜찮은 안드로이드폰 중고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굳이 안드로이드를 써야하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돈을 더 들여 아이폰 5라도 영입할까하는 고민을 한두번한 게 아니다. 그러던 차 네이버 윈도우폰 카페에서 중고로 윈도우10 모바일 기기를 팔겠단 분을 만나 영입하게 됐다.
그렇게 영입한 루미아 640은 기대 이상이었다. 윈도우폰8은 정말 죽은 운영체제라는 게 흠뻑 느껴지는데 윈도우10 모바일은 그렇지 않았다. 이전 버전보다 훠얼씬 스마트했다 — 물론 양대 스마트폰 운영체제와 비교하면 마음만 아플 뿐이니 그러면 안된다. 거기에 내 자신의 디지털 생활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생태계에 맞춰져 있어서 많은 부분들이 편리해졌다. 지금까지 찍어온 모든 사진들을 보거나 음악을 스트리밍할 때 모두 기본 앱으로 금방 할 수 있었고, PC에서와 같은 앱을 사용하기도 하니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절대적인 앱 부족은 어쩔 수 없긴 했지만 윈도우폰8보단 압도적으로 나아지니 상대적으로 풍요롭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백 투 와이어리스! 무선으로 음악을 듣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이팟 나노가 나쁘진 않았지만 아이폰 번들 이어팟으로는 음량 조절도 불가능해서 은근히 불편했다. 거기에 긴 이어폰 줄이라니. 번거롭기도 그런 번거로움이 없다. 물론 블루투스 연결은 이전 루미아 920도 할 수 있지만 배터리가 아주아주 문제여서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젠 음악도, 팟캐스트도, 통화도 무선으로 하니 스마트한 생활로 한뼘 더 옮겨왔음을 실감한다. 이런 곳에서 스마트함을 실감한다니 내가 윈도우 모바일에 거는 기대치가 낮긴 낮구나 싶기도 하지만 그건 마이너한 운영체제의 운명이니 어쩔 수 없다.
어쨌든 지금 현재로선 이 핸드폰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아마 지금도 여전히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일테지만 아무렴 어떤가. 연말까지 살아가기엔 충분하고도 남으니 큰 한시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