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스티븐슨의 책이다. “달이 폭발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달의 붕괴로 멸망에 직면한 인류가 종의 존속을 위해 우주정거장에 선발된 인원만 피신시키고 그 와중에 여러 일들이 겹쳐 마지막엔 일곱 여성만 남는 이야기이다. 이건 딱히 스포일러도 아니고 책소개에 당당히 써있는 내용. 이 책은 (주로) 그렇게 되기까지의 일들을 그리는 이야기이다.
찾아보니 원래는 한권짜리 책을 3권으로 나눈 것. 1권과 2권은 일곱 명이 남기까지의 일을, 마지막 3권은 그로부터 5천년 뒤의 일을 다루고 있다. 한국을 기준으로 하면 3권은 꼭 읽을 필요는 없다 느껴지기도 하는데, 2권까지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3권이 궁금해지기 때문에 결국엔 끝까지 읽고 만다.
이 책의 정보를 찾아보는 분들은 틀림없이 번역에 대한 불만을 접하셨을텐데, 아쉽게도 모두 타당한 불만들이다. 이는 전적으로 1권을 번역한 성귀수씨의 문제인데, 출판사에서도 문제를 느꼈는지 2권부터는 성귀수씨 외에도 송경아씨를 투입하였고 3권은 아예 송경아씨 단독으로 역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래서 3권에 나오는 5천년 후 미래의 인류 기술들이 1, 2권의 지금 당장의 기술들보다 쉽게 이해되는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가뜩이나 본문에서 기술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데 번역의 심각한 문제까지 겹쳐 초반에 읽기를 포기하는 분들이 많아보인다. 이 장르의 팬으로서 무척이다 안타깝다.
이러한 번역 때문에, 그리고 이 장르 중에서도 하드한 책이기 때문에 함부로 추천하기는 어렵지만 종말을 준비하는 인류의 모습을 그리는 것만큼은 확실히 훌륭한 책이다. 조금 어렵더라도 한 번쯤 이 책을 펼쳐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