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가 없는 창세기

John Noble Wilford가 작성한 NYT의 기사다. 창세기의 배경이 되는 장소와 시간대엔 아직 낙타를 가축으로 부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기원전 2천년 경에 살았던 아브라함, 야곱, 요셉과 같은 초기의 유대 족장 시대에 낙타는 별다른 역할을 맡지 않았을 테지만 그 때의 이야기들은 가축화된 이 짐 나르는 동물에 대해 20번 넘게 언급한다. 예를 들어 창세기 24장에는 아브라함의 하인이 이삭의 부인을 찾기 위해 낙타를 타고 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시대와 맞지 않는 이런 기록들은 성경이 서술하는 때보다 이후에 쓰여졌거나 수정됐다는 것을 말하고 검증할 수 있는 역사로서 항상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성경학자인 Noam Mizrahi가 말하기를 이 낙타들이 “기원전 2천년 경의 기억들을 요약하지는않”지만 “더 후대의 기억을 투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난 모세오경이 모세의 첫 기록들을 토대로 함을 부정하지 않지만 시대를 거쳐 편집되어 바빌론 유수 때 완성된 것을 현대의 우리가 읽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독서국민의 탄생》

“독서국민이라는 말이 뜻하는 것은 읽을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이나 읽고 쓰는 능력의 보급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다음 단계로서 독서 습관의 국민적 보급을 지향한 것이다. 당시의 표현을 빌려보면 ‘독서 취미의 함양’이라는 독서 습관을 국민 각 계층에 보급함으로써 출현해야 할 것이 ‘독서에 의해 형성된 국민’, 즉 독서국민인 것이다.”

국민이 활자 매체의 보급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린 책. 지방과 지방의 합이던 국가가 (철도와) 신문과 도서의 보급으로 어떻게 하나의 국민국가가 되는지 당시의 기록과 통계로 그려낸다.

《하나님 더 크게 말씀해주세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고 확신할 때라도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스티브 슐츠가 쓴 신앙서적. 답답한 마음에 제목만 보고 집어든 책이었다. 지금도 나에게 말씀하고 계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영적으로 예민해지고 그 말씀을 가로막거나 무시하려 하는 단단해진 마음을 무너뜨려야 한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나를 드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