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이브스》

닐 스티븐슨의 책이다. “달이 폭발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달의 붕괴로 멸망에 직면한 인류가 종의 존속을 위해 우주정거장에 선발된 인원만 피신시키고 그 와중에 여러 일들이 겹쳐 마지막엔 일곱 여성만 남는 이야기이다. 이건 딱히 스포일러도 아니고 책소개에 당당히 써있는 내용. 이 책은 (주로) 그렇게 되기까지의 일들을 그리는 이야기이다.

찾아보니 원래는 한권짜리 책을 3권으로 나눈 것. 1권과 2권은 일곱 명이 남기까지의 일을, 마지막 3권은 그로부터 5천년 뒤의 일을 다루고 있다. 한국을 기준으로 하면 3권은 꼭 읽을 필요는 없다 느껴지기도 하는데, 2권까지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3권이 궁금해지기 때문에 결국엔 끝까지 읽고 만다.

이 책의 정보를 찾아보는 분들은 틀림없이 번역에 대한 불만을 접하셨을텐데, 아쉽게도 모두 타당한 불만들이다. 이는 전적으로 1권을 번역한 성귀수씨의 문제인데, 출판사에서도 문제를 느꼈는지 2권부터는 성귀수씨 외에도 송경아씨를 투입하였고 3권은 아예 송경아씨 단독으로 역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래서 3권에 나오는 5천년 후 미래의 인류 기술들이 1, 2권의 지금 당장의 기술들보다 쉽게 이해되는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가뜩이나 본문에서 기술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데 번역의 심각한 문제까지 겹쳐 초반에 읽기를 포기하는 분들이 많아보인다. 이 장르의 팬으로서 무척이다 안타깝다.

이러한 번역 때문에, 그리고 이 장르 중에서도 하드한 책이기 때문에 함부로 추천하기는 어렵지만 종말을 준비하는 인류의 모습을 그리는 것만큼은 확실히 훌륭한 책이다. 조금 어렵더라도 한 번쯤 이 책을 펼쳐보기를 권한다.

2019년 2월과 3월에 본 영화들

알리타: 배틀 엔젤 로버트 로드리게즈, 2019
모터볼 경기는 묵직하며 멋있었고, 전투들도 많이 신난다. 그래픽도 잘 쓰였고. 오히려 그래픽이 덜 쓰인 부분이 연극 무대 같아 보여 이상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야기의 시작만을 그려서 별로라고 하지만 이정도면 원작을 생각하지 않는 독립 작품으로 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메리 포핀스 로버트 스티븐슨, 1964
리턴즈를 보기 위해 먼저 보았다. 어렴풋이 들어본 적이 있는 노래들이 나오는 걸 보고 꽤 놀랐다.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도 좋고 음악도 좋고 인물들도 좋은데 줄리 앤드루스가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시선을 장악하는 것이 참 대단했다. 당시엔 최신 기술이었을 것들이 쓰인 장면들이 지금에선 많이 별로인 걸 보니 기술의 발전이 놀랍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보리 김진유, 2018
이제 겨우 2월이지만 어쩌면 연말까지도 올해 본 한국 영화들 중 상위권에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그정도로 마음에 들고 감독에게 좋은 영화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싶은 좋은 영화.

메리 포핀스 리턴즈 롭 마셜, 2018
1편을 따라가려다 그 반에도 못미친 영화. 배우나 노래엔 불만이 없지만 주제를 이렇게까지 바꿀 거였으면 만들지 말았어야지.

콜드 워 파벨 포리코브스키, 2018
마법과도 같은 영화. 어떨 땐 영화 한 편만으로 감독을 믿을 수 있게 된다. 보고 나와서 바로 감독의 전작을 구매했다. 어쩔 수 없는 일.

도쿄의 밤하늘은 가장 짙은 블루 이시이 유야, 2017
영상도 이야기도 인물도 좋은데 영화 내내 흐르는 주제 의식이 진부했다. 그 지점에서 더 나아가느냐 나아가지 못하느냐가 아사코와 이 영화를 가른 지점이라 생각.

엠페도클레스의 죽음 장 마리 스트라우브, 다니엘 위예, 1987
아직 나는 이 영화에 대해 말을 할 능력이 못된다.

더 페이버릿 요르고스 란티모스, 2018
처음 보는 란티모스.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훌륭한 배우들의 멋진 연기.

캡틴 마블 애나 보든, 라이언 플렉, 2019
MCU 영화 중에서 빌런이 가장 추상이면서 현실인 영화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강한 히어로일 것이다.

안드로메다의 위기 로버트 와이즈, 1971
마치 별의 계승자 같다. 외계에서 온 물질은 소재일 뿐 정말 중요하게 보여주는 건 연구시설과 과학자들의 연구 자체. 이런 걸 좋아한다면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메트로폴리스 프리츠 랑, 1927
드디어 스크린으로 보았다. 주제는 낡았지만 — 그때도 진부했다고 한다 — 시대를 생각하면 놀라운 영상에 매우 놀랐다. 놀랐다를 두 번이나 써버렸다.

유레카 2018년 9월호 구입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자나깨나〉. 작년에 본 영화이지만 곱씹어 볼 수록 사랑하게 되는 영화다. 국내 개봉에, 그리고 재관람에 앞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이 영화 특집으로 꾸려진 유레카를 구매했다. 하마구치 감독과 하스미 시게히코의 대담으로 책이 시작하는데 내 일문 읽는 속도가 아주 느려서 재관람 전에 다 읽을 수나 있을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