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8 환전, 공연과 교통편 예매

여행을 준비하는데 이렇게 수고가 들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 안전하고 말도 통하는 나라(…일본)만 갔어서 준비하기가 어려웠던 적이 없는데, 이번엔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고 기간도 길다보니 신경 쓸 일이 무척 많다.

환전

유럽에 가서 보통은 ATM에서 돈을 뽑아 쓸 것이지만, 불상사를 위해 며칠간 쓸 현금은 있어야 한다는 카페의 조언을 따라 유로를 구매했다. 아무래도 첫날 저녁은 프라하 공항에서 먹을 것 같아 거기서 쓸 돈, 함부르크에서 쓸 교통비, 숙박비, 베를린으로 가는데 드는 교통비와 그곳의 숙박비 등을 합해 모두 520유로를 구매했다. 처음 든 유로는 마치 부루마블 화폐 같았다.한국과 일본의 길다란 돈만 만지다 가로 세로 비율이 다른 지폐를 만지니 신기했다.

내 일주일치 생존자금이다

공연

별 생각 없다가 돈이 은근 나간게 바로 공연이다. 내가 빈에 체류하는 동안 부활주일이 있기 때문에 호프부르크 왕궁 예배당에서 진행되는 미사 하나만 참석할 생각이었다. 돈내가며 미사드리는 건 빈 소년 합창단이 성가를 부르는 미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괜히 공연 일정 같은걸 보다보니 욕심이 났다. 그래서 적당히 고르고 골라 총 4번의 공연을 보는 걸로 했다.

도시 공연 가격
프라하 Smetana, Dvorak and Vivaldi in Old Prague 700 CZK
Mozart Requiem 38 EUR
Missa solemnis 36 EUR
부다페스트 Le corsaire 2000 HUF

프라하와 빈의 공연은 주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들인 듯하다. 그래선지 모두가 아는 곡들 위주이다. 프라하에서는 체코 작곡가들의 음악을 듣고 빈에서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듣는다. 부다페스트에서는 발레 공연을 처음 보게 된다. 〈해적〉을 보는데 내가 보는 공연이 첫 공연이다. 가장 싼 자리가 8천원도 안되는 가격이라 부담없이 예매할 수 있었다.

교통편

기왕 하는 거 도시간 교통편도 예매를 해뒀다. 총 6구간의 교통편을 예매했는데 이렇게 미리 예매를 하면 절반 이상의 일정이 고정돼버리는 것이지만, 그렇게 일정이 크게 바뀔 것 같지도 않고 해서 결제를 진행했다.

구간 종류 가격 (EUR)
함부르크 → 베를린 버스 17.66
베를린 → 드레스덴 버스 11.90
드레스덴 → 프라하 버스 20.24
프라하 → 빈 기차 22.00
빈 → 브라티슬라바 버스 1.00
브라티슬라바 → 부다페스트 버스 10.10

프라하와 빈 구간만 기차로 이동하고 나머지는 모두 버스 이동이다. 버스는 Flixbus를 이용했다. 단, 빈에서 브라티슬라바로 이동하는 구간은 Slovak Lines을 이용하는데 저렴한 핫티켓이 떠서 1유로에 살 수 있었다. 부다페스트 이후 구간은 현지에 가서 시간표를 확인하고 정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구매하지 않았다.

다음엔 숙소에 대해 써보려 한다.

2017년 2월의 시청각

오랜만에 노래를 열심히 들었다. 대신 책은…. 책을 읽기보단 여행책을 들여다보며 정보를 얻은 시간이 많았다.

# 읽었다

22세기 세계 프랑수아 드 생글리 외 지음, 전미연 외 옮김
학자들의 낙관적인 미래관 모음집. 받아들여질지를 고려하지 않고 각자의 생각을 전개해가서 좋았다. 결혼 제도의 해체는 여러모로 마음에 든다.

# 보았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클린트 이스트우드, 2014
기대가 너무 컸나….
그가 돌아왔다 다비드 브넨트, 2015
히틀러로 상징되는 위험은 멀리 있지 않다.
존 윅 리로드 2 채드 스타헬스키, 2017
여러모로 1편이 그리웠다.
핵소 고지 멜 깁슨, 2016
신념을 잠시 접어두라는게 얼마나 큰 폭력인지. 그리고 이 사람 얼마나 용기있는 사람인지.

선언하지 않는 평온한 생활

보수 성향의 교회를 다녔었다보니 온갖 곳에서 생각의 충돌을 경험했다. 설교 시간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이었다면 오히려 좀 나았겠지. 날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청년부의 많은 사람들과 이곳저곳에서 부딪히는 것이었다. 페이스북이 가장 힘들었다. 아무래도 대면하며 충돌하는 건 서로가 원하질 않으니 잘 안하게 되는데 페이스북은 아니잖나. 거기선 진화를 부정하는 사람과도, 소수자를 단죄하는 사람과도, 어처구니 없는 사상을 믿는 사람과도 교회 사람이기 때문에 친구를 맺고 있어야 했다.

특히 신앙관의 차이가 가져오는 괴리가 가장 힘들었다. 교회에선 그게 가장 근본적인 차이이고 거기서 많은 차이들이 비롯되니까 말이다. 그 교회에서 이런걸 처음 겪기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가장 큰 고통을 느꼈다. 그냥 다니기만 한게 아니라 여러가지 맡아서 그랬던 것일까. 결국 교회를 나왔다. 그곳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았기에 한 개교회(個教会)에서 벗어난 게 아니라 교회 전체로부터 탈출했다.

그랬더니 왠걸. 정말 많이 편해졌다. 더이상 선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혹은, 선언하지 않느라 힘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진화를 부정하는 사람과 괜히 싸울 필요가 없어졌고,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여러번 말할 필요가 없어졌고, 왜 잘못된 사상인지 얘기할 필요가 없어졌다. 당연한 것들을 당연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얼마나 피곤했는지. 거기에 신앙관이 다른 이들에게 맞춰가며 내 생각과 다른 말을 할 필요도 없어졌다. 나도 그런 사람인양 있지 않아도 되니 세상 이리 편할 수가 없었다.

무거운 것들을 내려놓고 얻은 평안. 이젠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물론 모를 일이다. 하지만 친구를 따라 가본 교회에서 지금까지 겪었던 힘든 일들이 떠오르면서 분명히 그렇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