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반윙클의 신부〉 (2016)

오랜만에 돌아온 이와이 슌지 감독은 여전히 빛을 잘 다룬다. 너무 빛을 잘 다루는 사람이라 분명 씁쓸해야 할 장면, 화가 날 장면인데도 화면이 예뻐 평온하게 지켜볼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분명 이 영화는 그걸 노린 작품일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고통 속에 빠지고 관계가 무너지는 장면임에도 이렇게 찍어낼 수 있구나. 극 중 인물이 무너지면 감정도 같이 무너지는 내가 이렇게 관조하며 볼 수 있구나 싶었다.

영화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소셜 미디어의 가벼움 같은 주제가 이 영화를 본 이들의 입에서 많이 나왔더라. 책을 읽은 이들의 얘길 들어보면 그것 역시 감독이 의도한 것으로 보이지만 나는 끝까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삶의 기본이 웹 커뮤니티-소셜 미디어라서 그럴까? 감독과 나의 세대차이일지 모르겠다. 오히려 후반에 언급되는 돈으로 행복을 사는 것 — 아니다. 본지 꽤 돼서 잘 기억이 안난다. 고마움을 돈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나? 그 얘기를 더 인상 깊게 보았다.

이와이 슌지의 어두운 영화들을 싫어하는 이들이 이걸 본다면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치만 두 배우가 웨딩 드레스를 입는 장면만은 꼭 봤으면 좋겠다. 예쁜 사람들이 예쁜 옷을 입는 모습을 예쁘게 그려내는 장면은 훌륭한 것이다.

처음 도쿄 007

도쿄에서의 세번째 아침 식사는 근처 마트에서 사온 도시락이었다. 이 날이 숙소 체크아웃하는 날. 우리가 마트에 가서 쇼핑할 때는 지금뿐이야! 그래서 근처의 꽤 큰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구매했다. 파스타도 사오고 가쓰오부시도 사오고 맥주들도 많이 사오고 이것저것. 한쪽에서 도시락을 파는 걸 보고 아침 뭐 먹지라는 인류 3대 난제 중 한개를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연어가 들어간 도시락과, 일본에 왔는데 아무래도 이건 먹어야지 싶어 산 고로케로 아침을 해결했다. 도시락 맛있었어. 고로케는 별로였어.

후식으로 푸딩을 먹었다. 이 날 바로 비행기를 타는 거였다면 몇개 사들고 왔을텐데.
이제 우리의 계획은 이렇다. 도쿄역에 가서 락커에 짐을 넣어둔다. 하루종일 구경과 쇼핑을 한다. 도쿄역으로 돌아와 근처 24시간 맥도날드에서 밤을 보낸다. 아침에 공항리무진을 타고 나리타공항으로 간다. 그래서 일단 도쿄역으로 갔다.


보통 도쿄역하면 보는 역사 정면을 난 보지 못했다. 전철타고 도착해서 볼 수 있던건 뒤쪽, 그러니까 야에스八重洲 출구쪽으로 들어가고 나온데다가 일부러 건너편 바깥으로 나갈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노선 환승하면서 도쿄역 돔의 아래쪽이나 찍어볼 수 있었다. 파사드는 다음 기회에. 그땐 황거도 꼭 봐야지.

더불어 도쿄역 지하에는 저렇게 캐릭터 스트리트가 있었다. 아니 도쿄역 지하 자체가 아주 크더라. 그 안 극히 일부에 캐릭터 스트리트가 있는 것인데 여러 캐릭터 상품들을 파는 곳들이 모여있었다. 덥고 힘든데 굳이 백팩을 메고 싶지 않다는 핑계로 여기서 구데타마 토트백을 하나 샀다. 진짜 백팩 메는게 힘들긴 했다. 다니다 보면 땀도 나고.

이제 시모키타자와에 왔다.
이때가 이미 오후 5시인데 도쿄역에서 시간을 꽤나 써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캐릭터들 보느라 1시간은 쓴 거 같고, 그 외에도 지하에서 여러가지 구경을 한 것 같은데 벌써 1년이 가까워 오고 남은 사진도 얼마 없어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말 여행기는 빨리 써야한다. 사진도 많이 찍어야 하고.

어쨌든 다시, 이제 시모키타자와에 왔다. 모 작품에도 이름이 들어갈 정도고 한국에서도 유명하지만 나는 사실 잘 모르는 곳이다. 쇼핑하는 곳이니까 쇼핑 하고 여러 가게들을 구경 다녔다. 모자 가게도 보고 옷 가게도 보고 악세사리 가게도 보고 그러는데 지금까지 봤던 동네들보다 더 재밌더라. 재밌는 물건들도 많고. 그렇게 놀다가 잠깐 간식도 먹고 다리도 풀겸 크레이프 가게에 들어갔다.

나는 왼쪽 바나나 초코 커스터드 크레페와 망고 요거트를, 친구는 바나나 생크림 크레페와 초코 바나나.. 요거트일까? 그렇게 주문했다. 두근두근하며 기다리니 아이고 이렇게나 맛있는 크레페라니! 지금까지 먹어본 크레페는 대학로와 홍대에서 먹어본 게 전부였지만, 그 두번을 먹으면서 크레페라는 거 참 별로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일본에 와서 먹어보고 나니, 단 맛이 풍부하고 스트레스가 녹으며 그 빈 자리를 살이 충실하게 매꿔주고 있는게 느껴지다니. 동네에 이런 곳이 있다면 훨씬 살 찔 수 있겠다는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내가 주문한 것보다 친구가 주문한 것이 더 맛있다는 게 안타까웠다. 나는 왜 생크림을 버린 것일까. 왜 그런 일을 한 걸까?



サザンヒルズカフェ
http://southern-hills-cafe.com
食べログ

그런데 다들 저녁 먹을 시간이어서인지 나중에야 몇몇 들어왔지만 당장은 우리 빼고는 이렇게 중학생 커플 밖에 손님이 없었다. 덕분에 편하고 여유롭게 간식과 대화를 누릴 수 있었다. 셀카를 찍어대며 다음에 뭐하지 뭐먹지 등등. 좋은 시간을 보냈다.


시모키타자와를 떠나 신주쿠에 왔다. 마침 퇴근시간이어서 사람은 엄청나게 많고 우리는 자꾸 길을 헤맸다. 친구가 살 걸 찾아 백화점에 올라가고, 내걸 사러 지유(GU)에 가고. 덕분에 괜찮은 옷들을 몇 벌 사와서 지금도 잘 입고 다닌다. 지금은 계절이 안맞아 입고 있지 않고 이제 곧 꺼내 입겠지. 신주쿠 지유 매장은 한국인과 중국인이 참 많아서 익숙한 아시아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택스리펀 줄이 그렇게 긴 걸 처음 보기도 했고.

이제는 도쿄타워에 갈 시간이다.

2016년 9월의 시청각

책 읽기보다 영화 보기에 힘쓴 한 달이었다. 다음 달도 열심히 그럴 예정이다.

# 읽었다

편안한 침묵보다는 불편한 외침을 프랑크 옐레 지음
바르트는 소중하다. 정말 소중한 사람이다. 기독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직도 외치는 듯하다.

# 보았다

아이 인 더 스카이 개빈 후드, 2016
시종일관 책임의 무게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 미셸 공드리, 2004
http://joseph101.com/2016/09/3730
벤허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2016
세상엔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이런 영화를 만든다거나.
카페 소사이어티 우디 앨런, 2016
http://joseph101.com/2016/09/3770
유로파 리포트 세바스찬 코르데로, 2013
과학을 가운데 두고 풀어내는 썩 괜찮은 파운드 푸티지물. 그럴 필요가 없는데 저평가되고 있는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