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와이어리스, QCY-QY19

몇개월 전 잘 쓰던 소니의 MDR-AS600 블루투스 이어폰을 어처구니없게 잃어버리면서 원치 않게 유선 이어폰 생활로 돌아가고 말았었다. 애플의 이어팟이 번들임에도 준수한 성능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비 오는 날 우산 접다가 또는 가방을 다루다가 이어폰 줄이 걸리는 일이 자꾸 벌어지면서 유선에 대한 분노가 다시금 깨어나기 시작했다. 전에는 이어폰 끼고 아이폰은 바지 뒷주머니에 넣은 채 룰루랄라 걸어다녔는데 선이 이어지니 아이폰은 들고 다녀야 하고, 조금 달릴 때마다 이어팟은 귀에서 자유롭게 해방되고 그러니 아무래도 안되겠다 이러다 내 짜증이 아주 크게 커져버리겠다 싶어 블루투스 이어폰을 하나 사기로 했다.

하지만 이전에 쓰던 게 8만원 가까이 하던 놈인데다가 그와 비슷한 성능을 내는 제품 역시 비슷한 가격대인 걸 보고 나니 선뜻 구매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차피 막귀인데다가 진지하게 듣는게 아닌 배경음악처럼 음악을 듣는 내 생활을 감안하며 ‘준수한 성능’이란 건 조금 포기하고 좀 더 저렴한 제품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이곳저곳에서 입에 오르내리던 QCY-QY19를 구매하게 됐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이 제품의 사용기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내가 생각한 부분들만 간단히 적기로 한다. 단점부터 얘기해보자. 이 제품은 ‘듣기 좋은’ 음역대가 정해져 있다. 막귀인 내가 느낄 정도이긴 하다. 저음부에서는 탁한 안개가 낀 마냥 소리가 무너지고 고음부에서는 벽을 만난 것처럼 일정 이상으로 넘어가질 못한다. 또한 사용시간이 길지 않다. 경량화를 추구하면서 벌어진 일일 것이고 MDR-AS600이 길었던 점도 한 몫할 테지만, 사용시간이 4시간 정도 뿐인 건 밖에서 들을 일이 많을 경우 아쉬운 부분이다. 5시간 정도였다면 충분하다 느낄텐데 4시간이라 그러니 쓰다보면 신경이 쓰이고 그런다. 그리고 음성 안내를 끌 수 없다는 점 역시 단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볼륨을 낮추다보면 볼륨칸이 한 칸 남았을 때 최저 음량입니다하고 알려준다. 한 칸 더 내리면 어차피 음소거일텐데 굳이 안내할 필요가 있을까? 또 전화가 오면 발신자의 번호를 하나씩 읽어준다. 이런 기능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적어도 끌 수 있게는 해놔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난 시계가 열심히 알려주는데 귀로도 그 번호를 듣고 싶지 않다. 참, 최저 음량의 문제는 사실 다른 곳에 있다. 최저 음량이라고 안내해놓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직 음소거에 진입하지도 않았는데 소리가 나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다. 분명 그 한 칸의 소리가 필요할 때도 있는데 말이다.

이제 장점을 말해보자면, 참 가볍다. 이전에 쓰던 제품이 살짝 무겁기도 했어도 번거로울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 제품을 껴보니 훨씬 가벼워서 귀에 부담없이 쓸 수 있어 좋더라. 리모트 부분도 크지 않아 좌우 균형도 썩 잘 맞는다. 그리고 역시 이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일 것이다. 소리가 뿌옇네, 음질이 아쉽네 해도 가격이 떠오르면 역시 좋군! 하게 되는 법이다. 3만원도 되지 않는 가격에 이런 성능이라면 부담없이 무선 이어폰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도 한소리 들을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괜찮은 제품으로 다시 무선 생활로 돌아오니 걸리적 거리는 것도 없이 생활할 수 있어서 삶이 한층 쾌적해졌다. 구매한 이후 하루하루 이런 저렴하면서 준수한 제품을 내주는 중국에게 감사하며 산다. 정말이지 덕분에 유선 지옥을 탈출하고, 아주 감사합니다! 여러분도 한번 무선 생활로 오시면 나처럼 유선으로 돌아가기 싫어질 것이다.

맞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헤드 부분에 자석이 있어서 헤드끼리 붙일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무선 이어폰은 아무래도 분실의 위험이 클 수 밖에 없어서 다른 제품처럼 헤드끼리 붙일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싶다.

〈카페 소사이어티〉 (2016)

예고편이 나왔을 때부터 보고 싶었다가 개봉 후 거의 바로 보게 됐다. 우디 앨런의 영화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본 게 전부여서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인지 어떤 걸 그리는 사람인지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다. 변하는 시간 속에서 닳아가는 주인공들과 그 와중에도 변하지 못하고 남아버린 것들을 빠른 속도로 그려내니 보는 내내 답답하지 않고 재밌게 볼 수 있었다. 중요한 이야기들 중심으로 휘리릭 지나가는 이야기가 참 좋더라. 지금 끝나면 아주 좋겠다 싶을 때 마무리 짓는 것도 좋았고.

영화를 보고 나와서 며칠이 지난 지금에도 자꾸 다시 보고 싶어지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 영화가 많이 마음에 든 것 같다. 이제 블루레이를 기다립니다.

처음 도쿄 006

다이칸야마에서 돌아왔으니 숙소 이야기를 잠깐 해본다. 우린 레트로메트로 백패커즈에 머물렀다. 아사쿠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인데 이곳이 좁긴 해도 시설은 참으로 괜찮았다. 이전 교토에서 숙박했던 곳은 샤워실이 하나 뿐이라 기다리는 일도 있었는데 이곳은 샤워실도 두 곳, 화장실도 두 곳이라 여유롭게 쓸 수 있었다. 좁은 건물에 그렇게 다 들어가 있다는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긴 하다.


レトロメトロバックパッカーズ
http://retrometrobackpackers.com/

로비는 이렇게 생겼다. 밤에 찍은 거라 좀 어둡긴 하다. 차도 끓여마실 수 있고 컴퓨터도 이용할 수 있다. 이 사진을 찍을 땐 저기 청소하려고 묶어놓은 시트들 뒤에 숨어있다. 안타깝게도 도미토리는 찍지 못했다.

이 날은 토리노이치가 열리는 날이다. 토리노이치에 대해서는 이 글을 한번 봐보자. 다만 나는 아사쿠사에 있었으니 신주쿠의 하나조노 신사가 아니라 쵸코쿠지長国寺란 절에 가는 것이다. 이왕 일본에 왔는데 이런 이벤트는 봐야하지 않겠나 싶어서 이제 밤 12시가 가까워오지만 나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심야라도 걸어갈만 하더라. 다만 친구가 포켓와이파이를 갖고 들어가선 그대로 잠들어 버려서 구글지도의 GPS만 믿고 나섰다.


밤에 걷는 골목길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친구와 수다떠는 편의점 알바분도 보고 저렇게 한국가정요리집도 보고 상수도 공사하는 모습도 보고.

도착했더니 사람들이 꽤 많더라. 멀리서부터 노점들이 들어서있고. 나야 들어가서 뭘 할건 아니니까 밖에서 사람들 들어가는 것만 구경했다. 절 경내에 들어갈 때 정화를 하기 위함인지 뭘 막 흔드는 모습들도 보고 출구쪽에선 갈퀴를 살 때마다 박수쳐주는 모습도 보았다. 하지만 노점에서 사먹었던 니쿠마끼가 너무나도 맛도 없는데 비싸기만 해서 기분이 많이 상한 상태였던 덕에 이 모든 걸 감흥없이 보고만 있었다. 아아,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조금의 맛도 없는 500엔짜리 니쿠마끼. 한가지 웃었던 것은 닭을 뜻하는 酉와 서쪽의 西가 비슷하다보니 지나가면서 니시노이치 간다고 하는 남자애가 한명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왕놀림 당하던….

돌아오는 길엔 일부러 살짝 길을 돌아 오는데 저녁 대신처럼 먹었던 미스터 프렌들리의 핫케이크나 하필-먹은게-너무-맛없던 니쿠마끼도 대충 소화되는 듯해지니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눈 앞에 보이는 라멘집에 들어가 하나 먹어보기로 했다.


中華料理 豊龍
食べログ

앉기도 전에 바로 눈에 들어온 미소라멘을 한그릇 시켰다. 심야다 보니 나 말고는 단골손님으로 보이는 사람 한명, 야근 후 퇴근한 걸로 보이는 사람 한명이 전부였다. 넓은 가게는 아니었지만 적당히 거리를 두고 앉을 수 있었다. 주인분도 나이 드신 할아버지셨고 단골과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니 주 고객들도 비슷한 나이거나 중년 이상이 많았던 듯 싶다.

그리고 나온 라멘은 특별히 맛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건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그치만 하필이면 매운 미소라멘이었다. 메뉴엔 맵다는 얘기 없었잖아요. 이 매움은 일본의 매움이지만 내가 바랐던 것도 아니고, 내가 먹기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이지 이날 밤의 메뉴 선정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터덜터덜 돌아가서 이빨 닦고 얼른 침대에 누웠다. 이런 날 위로해주는 건 이불 뿐이구나 싶은 밤이었다.

오는 길에 본 개신교 교회. 일본에서 교회를 보게 되면 많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