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이벌〉 (2016)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가 영화로 나온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다.

음악과 영상은 출중했다. SF 영화에 맞는 훌륭한 연출도 좋았다. 하지만 내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한 걸까? 도저히 이걸 〈네 인생의 이야기〉라고 부를 수가 없다. 경이와 과학이 주인공이 되는 영화도 좋다는 걸 〈마션〉이 보여줬는데도, 원작에서 만날 수 있는 경이를 느끼기가 어려웠다. 경이를 제하고 긴장을 늘리는 게 정말 ‘좋은 것’일까?

그러고보니 〈마션〉도 영화에서 실망을 많이 했었다. 이것마저 그럴 줄은 몰랐지만.

〈아주 긴 변명〉 (2016)

오다기리 죠와 아오이 유우가 나오는 다른 영화를 보려다 유튜브에서 예고편을 미리 보니 아무래도 이걸 봐야겠다 싶어 골랐는데 정말 잘 골랐다.

껍데기를 두르며 살아가는 사람이 배우자의 죽음 이후 바른 자신, 바른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간단히 정리할 수 있지만, 그런 뻔한 게 많이 보이는 서사임에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마지막 몇 부분은 사족이라고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작품의 완성도는 흔들리지 않는다. 한국에 개봉하면 꼭 많이들 봤으면 좋겠는 작품이다.

그나저나 영화제에서 본 영화 내용에 대해 많이 쓰면 안된다는 글을 봤더니 다 풀질 못하겠다. 흑흑

〈분노〉 (2016)

이상일 감독의 영화는 처음이었다. 캐스팅이 대단한 것도 그렇고 처음 트레일러를 봤을 때부터 이건 봐야지 싶었는데 다행히 예매를 잘 해서 ㅎㅎ

하나의 살인 사건에 뒤흔들리는 세 이야기가 각각 별개로 진행된다. 아야노 고가 나오는 이야기에서는 그와 츠마부키 사토시가 서로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다. 둘 다 좋아하는 배우인데 둘을 엮으면 어쩌자는 거야 날 죽일 셈인가. 또 다른 이야기에선 와타나베 켄의 평범한 아저씨 연기를 너무 오랜만에 봐서 적응하기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요새 미국 영화에서 더 잘 보게 되다 보니….

이렇게 두 이야기는, 그래 참 괜찮았다. 하지만 남은 한 이야기는 꼭 그렇게 그려야 했을까? 원작이 되는 소설도 이렇게 그리나 궁금해지고 — 그러나 굳이 읽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고 — 또 남성의 이야기를 위해 여성 캐릭터가 희생되는구나 싶었다. 정말 내 안의 평점이 깎이는 건 다 이것 때문이다. 그 점 이외에는 참 괜찮았는데. 배우들도 정말 좋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참 좋았는데.

영화가 끝난 후 GV 시간이 있었다.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이상일 감독과 와타나베 켄이 왔는데, 원작 작가가 소설이 출판되기 전에 감독에게 먼저 보내줬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작가 스스로가 영화화는 이상일 감독에게 맡겨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니. 첫 영화가 썩 맘에 들었기 때문에 — 아 그것만 빼고 — 그가 만든 다른 영화들을 한번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