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도쿄 004

숙소는 주택가 사이에 있어서 아침에도 매우 조용하다. 내가 아침만 되면 시끄러운 초등학교 옆에 살아서 그런지 이런 조용함이 정말 좋다. 바로 앞 텐푸라 가게에도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관광객이 으레 그렇듯 가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텐푸라 가게 말고도 교자 가게도 있었는데 항상 문 열고 닫는 모습만 보고 말았다. 다음 번 도쿄에 가게 될 때에도 같은 숙소에 머물고 싶은데 그때라도 기회가 되면 찾아가봐야지. 참 도쿄에 온 이후로 날씨가 정말 좋았는데,

보라, 끝내주는 하늘이지 않은가? 11월 도쿄는 최고다 여러분. 어젯밤에도 들렀던 아사쿠사에 다시 온 이유는 가장 가까운 역이 아사쿠사역인데다가 그러는 김에 들려서 낮의 아사쿠사를 보려고 왔다. 아사쿠사에 있는 절의 이름은 센소지浅草寺인데 아사쿠사浅草와 한자가 같다.



유명한 명소다 보니 아침부터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수학여행 온 듯한 학생들도 보이고, 향 앞에 있는 사람들도 있고, 뭐라 부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부처님께 기도드리는 사람들도 많고, 이것저것 기념품을 구경하는 사람은 정말 많았다. 이런 곳에 이런 좋은 날씨에 왔으니 아무래도 기념사진을 찍어야겠다 싶어서 친구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찍어봤다. 찍는 사람에겐 문제가 없었는데 찍히는 나에게 문제가 많았다. 기념사진이라니 대체 어떤 자세를 취해야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더라. 그렇게 너무나 엉성한 자세에 너무나도 애매한 표정으로 이상하게 찍은 사진을 몇장 남겼다. 피사체가 되는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아침을 안먹고 나섰으니 간식을 하나 먹자 해서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아사쿠사실크푸딩을 먹으러 갔다. 듣기로는 카미나리몬 근처에 있다 했는데 지도는 우리를 뒷골목으로 안내해서 지도가 틀렸나 네일동에 물어봐야하나 걱정했지만 그 길이 맞았다. 다행스럽게 푸딩 가게를 찾은 우리는 푸딩을 하나씩 샀다. 나는 가장 기본이 되는 푸딩을 골랐다.



淺草シルクプリン
http://www.testarossacaf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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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세번을 가면서 먹어보지 못했던 푸딩을 드디어 먹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름부터가 실크푸딩인데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 어쩜, 세상에, 어머나. 계란과 생크림으로 만든 실크푸딩은 그 맛도 실크같았다. 식감도 실크인데 맛까지 실크. 집에 사갈 수만 있다면 몇개라도 사가고 싶은 맛이었다. 얼마전 한국에 들어왔던 토로로 푸딩보다 맛이 있는 거 같은데 그게 여행지에서 먹기 때문인 것만은 아닌 듯 싶다. 친구와 나는 앞으로 남은 여행일 동안 매일같이 이걸 먹기로 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일어나 역으로 가는데 저 멀리 보이는 스카이트리. 저기까지 걸어갔다 왔단 말이지. 이렇게 하늘이 맑은 날 올라가면 후지산까지 보일 거 같아 많이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 지하철을 탔다. 시부야에 가는 계획이었지만 내가 가보고 싶은 카페가 있는 걸 알고 친구의 배려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오모테산도에 먼저 들리기로 했다.

ブルーボトルコーヒー青山
https://bluebottlecoffee.jp/cafes/aoy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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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건너온 블루보틀 일본 2호점이 오모테산도에 있다. 1호점은 좀 더 한적한 동네에 있는데 여행객에겐 동선에서 좀 벗어나는 위치에 있어서 2호점으로 오게 됐다. 분위기는 커피 파는 편집샵 같은 느낌에 모든 커피를 하나하나 손으로 내리고 있었다. 그런 과정을 고객이 전부 볼 수 있도록 열린 공간에서 진행하는데 그런 배치가 주는 깨끗함이 마음에 들었다.

무난하게 라테를 마셨는데 음 썩 괜찮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쪽의 맛은 아닌데도 맛이 좋아서 즐겁게 마셨다. 특히 야외 테라스에서 서서 마실 수 있게 해놨는데 그게 참 괜찮더라. 이런 구조는 배워놔도 좋을 것 같다.
나가는 중에 친구의 부추김으로 커피를 좀 샀다. 이 커피는 남은 기간 동안 캐리어 속에 커피향을 흩뿌리며 머물게 된다.

이제 시부야로 간다. 시부야 역을 나오니 그 유명한 교차로를 바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디즈니 스토어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구경은 나중으로 미뤘다.

그렇게 해서 먼저 온 디즈니 스토어는 사고 싶은 게 많았지만 당장의 내가 살만한 건 없는 그런 곳이었다. 인형도 좋고 여러가지 좋은게 많은데 지금 사서 뭐에 쓰지, 이런 느낌으로 열심히 구경했다. 그래도 저 사진의 츠무츠무들을 사오지 않은 건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한두개는 사올 수 있었잖아. 왜 안샀니 으이구. 그리고 내심 기대했던 스타워즈는 역시나 없었다. 같은 디즈니여도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그렇겠지? 그래도 구석에 조그맣게라도 만들어주면 좋잖아, 여기 일본인데 스타워즈 좋아하는 나라인데. 궁시렁 궁시렁….

그리고 돌아온 시부야 교차로! 도쿄 여행의 감격스러운 점은 TV에서나 보던 명소들에 직접 가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시부야에 가보게 될 거라곤 생각을 못했는데 이렇게 오게 되는 거 자체가 놀라운 경험이 되었다. 시간만 엄청 많았다면 여기저기 유명한 곳들 들어가서 눈으로라도 쇼핑을 할텐데 배고파서 빨리 지유가오카에 가 점심을 먹고 싶었던 우리에게 그런 여유가 없던 것이 아쉽다.

또 이 날 재밌던 건 엑소의 음반이 일본에서 처음 발매하는 날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에 엑소팬 많지 않았던가. 단독 콘서트도 많이 열었던 걸로 아는데 첫 발매라니. 그런데 그게 진짜였다. 그런 날에 시부야에 오니 계속해서 엑소 노래가 나오는게 신기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일본의 한복판에서 한국 노래를 듣는 — 물론 가사는 일본어지만 — 경험 역시 놀라운 것이었다.

그래도 하치공을 접견하는 건 잊지 않았다. 이제 빨리 밥먹으러 지유가오카에 가야지. 배고프다.

일기를 이렇게 써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일기를 어떻게 썼냐 하면 iOS의 앱인 Drafts에 적으면 드랍박스에 저장하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이 방법은 서울비님의 글을 보고 제작년 10월부터 시작한 방법이다. 나 역시 일기를 어느 플랫폼도 가리지 않는 플레인 텍스트에 저장하고 싶었기에 이 방법을 택해 써왔다. 하지만 일년 넘게 써보니 문제가 생겼다.

이렇게 편하게 일기를 쓰는 법을 만들어둬 내가 쓰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처음 일기를 써보며 알게된 것인데 쓴 일기를 다시 꺼내보는 일은 없더라. 특히 그것이 물리적인 책이 아닌 디지털 파일이니 더 그랬다. 당장 이번 달의 일기도 보지 않는데 — 게다가 쓸 때조차 보지 않는데 — 작년의 일기를 볼 일이 어디있겠나.

그래서 일기 작성법을 바꾸었다. 지금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던 글에서 보게 된 방법인데, 말하자면 5년 일기, 10년 일기 등의 방법을 디지털로 옮긴 것이다.

위의 스크린샷을 참고로 얘기해보면 2016년의 7월 9일자 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7월 9일자에 2016년 그 날의 일기를 쓰는 것이다. 그래서 1년 전 같은 날 나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방법이다. 개별 파일로 저장되게 되는 플레인 텍스트에선 이 방법을 쓰기도 난감하고 더불어 다시 읽어보지 않는 단점을 없애고자 원노트에 일기를 쓰게 됐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없어지지 않는 한 일기는 남을테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혹시나 해서 일단 2014년부터의 일기를 옮겨봤는데 꽤나 만족스럽다. 내가 작년 어떤 생각으로 살았는지 알게 되니 일기를 열어보고 싶게 되고 결국 일기를 쓰게 되는 효과를 얻었다. 의무감에라도 글을 채워 넣어야겠는 마음도 들게 되었다. 매일 하는 생각이지만 오늘도 해야겠다.

‘일기를 꼭 써야지’

처음 도쿄 003

숙소 근처에는 주방용품을 파는 거리, 갓파바시가 있다. 처음부터 이곳에 가기 위해 근처의 숙소를 잡은 것인데 생각보다 더 가까이 있었다. 걸어서 1분도 안걸리는 거리였을 줄은 몰랐지. 중간에 시간과 동선이 애매해져서 잠시 숙소 들려서 짐도 놓을 겸 들러보기로 한 것이었는데 왠걸 쇼핑을 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친구가 쿠키 틀하고 기타 여러가지를 사는 중에 난 필러랑 팬케이크 틀들을 좀 구매했다. 2015년 인기 필러 1위라고 해서 샀는데 돌아오는 날 깜빡하고 수하물에서 넣지 않은 바람에 나리타 공항에 버리고 왔다. 하아 정말이지.

장을 보고 오는 중에 벌써 해가 져버렸다. 체력이 없는 우리들은 벌써 지치기도 해서 다른 모든게 귀찮아지기도 했지만, 대충 짐 정리를 하고 다시 움직이기로 했다. 이렇게 시간이 빌 때 스카이트리를 가보는 게 좋을 거 같아 그쪽 방향으로 움직였다. 가는 길에 아사쿠사가 있어서 먼저 들리게 됐다. 밤의 나카미세도리는 역시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 여기에 와있다는 거 자체가 엄청 신기했다. 뭐 파는지 구경하고 다른 여행객들도 구경하고. 밖에 나갈 때마다 깨닫지만 한국인은 정말 한국인처럼 생겼다. 한눈에 봐도 구별할 수 있을 정도.


浅草メンチ
http://www.asam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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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른 김에 아사쿠사 멘치까스를 먹는다. 내가 이걸 얼마나 먹고 싶었는데! 한 개 200엔의 싼 — 일본 돈은 숫자만 보면 왠지 싼 기분이 든다 — 가격으로 이렇게 맛있는 멘치까스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원래 키치조지나 멀리 고베 같은 곳에서 먹고 싶었지만 이건 이거대로 훌륭해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나머지 아사쿠사 구경은 다음 날 해가 떠있을 때 하기로 하고 스카이트리를 향해 나아갔다. 난 저렇게 건물들 위로, 사이로 전철이 지나가는 모습이 좋다. 주변에 사시는 분들은 싫으시겠지만 3인칭 관찰자인 내겐 매력적이다.

스미다강을 건너는 아즈마바시에 도착했다. 아즈마바시의 이쪽 서편에선 모두 저 스카이트리와 아사히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멀리 스카이트리가 보이는데 숙소에서 출발했을 때랑 크기가 그다지 달라진 것 같지가 않다. 얼마나 멀리 있는거지? 그리고 그 앞으로 전통있는 랜드마크인 아사히의 💩 건물이 보인다. 저걸 설계한 사람도 그렇고 그 안을 승인한 사람들도 그렇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너무 궁금하다.
그리고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더 좋은 카메라가 갖고 싶어진다.

다리를 건너며 보는 스미다강이 참 예쁘다.

걷고 또 걷고 왜 버스를 안탔을까 돈 아끼는 것보다 몸을 편히 다니는게 나았겠다라고 생각하는 중에 드디어 스카이트리에 도착했다. 음, 사실 아니다. 오른쪽 사진은 스카이트리에 도착하기 20분 전에 찍은 사진이다. 바로 지척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전혀 그렇지가 않다. 얼마나 큰거야. 이후에 도착하고 나서는 스카이트리를 찍은 사진이 없다. 너무 크고 높아서 내 조그만 카메라게 담기지가 않더라.
역시 큰 카메라가 필요해!

스카이트리에서 뭘 했냐하면, 그냥 구경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조그만 루피시아 샵이 있던데 스카이트리 한정 차를 팔고 있길래, 하하 당연히 샀다. 지브리샵도 가봤다. 와 예쁘다 귀엽다만 얘기하고 비싸서 나왔다. 지브리를 그리 좋아하는게 아니기도 하고.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힘들었는데 스카이트리 밑의 상점가도 넓은데다가 동선을 잘못 잡아서 더욱 지치고 말았다. 지브리샵은 동쪽 끝에 있는데 우리가 가기로 했던 무민카페는 서쪽 끝에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쉬려고 스타벅스에 허겁지겁 들어가기도 했다. 지도를 이리저리 보고나서야 겨우 찾은 무민카페에 가봤는데 허기가 진 것도 아니어서 상품들만 구경하고 나왔다. 가게 자체에 실망한 것도 있고.
그리고 아사쿠사까지 다시 돌아가는 건 그냥 전철을 탔다. 우리 둘 다 도저히 걸을 자신이 없었다. 오는 길에 친구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나 자신이 힘든 것은 괜찮지만 내 결정 때문에 친구까지 힘들게 한 것이 정말 미안했다.



つけ麺家 利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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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쿠사로 돌아올 땐 이미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저녁을 먹지 않았었기에 역시 배가 출출해지긴 했고, 이대로 숙소로 가게 되면 더욱 배가 고플거 같아서 근처의 츠케멘 가게에 들어갔다. 타베로그 점수는 그렇게 높지 않았는데 이 시간 이 근처에 마땅히 다른 가게가 있는 게 아니라서 여길 골랐다. 가게 이름은 리헤이利平. 늦은 시간이라 가게엔 혼자 온 몇몇 사람뿐이었고 다들 조용히 자신의 면을 먹고 있을 뿐이었다. 우린 적당히 보통 크기의 면을 골라 주문했는데 나온 거는 양이 꽤 많았다. 주방 앞 자리에 앉아 먹느라 다른 사람들이 시킨 것들을 볼 수 있었는데 다들 양이 많은 오오모리를 먹더라. 일본 사람들은 양이 적다고 누가 그랬나.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이곳의 츠케멘 자체는 그렇게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일본의 면요리들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인데 처음 먹어본 츠케멘이 이렇게 별로다보니 앞으로 다시 먹을 일이 있을까 싶다.

이미 거리엔 사람이 없고 몸은 지쳐서 숙소로 돌아가는데, 배만 채우고 맛은 채우지 못한 안타까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