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유람 012

아침이 밝았다. 이 날은 숙소에서 아라시야마嵐山에 들렀다가 오사카로 이동하는 날이다. 숙소 뒷뜰은 작고 예쁜 곳인데 밤새 비가 조금 내려서인지 살짝 젖어있었다. 이날은 하늘에 구름이 끼어있고 간혹 물방울이 떨어지는 날씨였다. 계속 우산을 들고 다녀야 했던 날. 아침에 체크아웃을 먼저 했지만 짐을 들고 갈 순 없으니 오후까지 숙소에 맡기기로 했다.

아라시야마는 교토의 서쪽에 있는데 숙소에서 그곳까지 가기엔 좀.. 멀었다. 그래도 숙소가 교토 중심부에선 서쪽에 있어서 직선거리는 가까웠는데 아라시야마까지 가는 버스가 많이 돌더라. 버스 기다리는데 저런 기린이 보이더라. 거의 바닥에 있던데 왜 그런 곳에 이런 귀여운 타일을 붙여놨는지. 아라시야마까지 버스 타고 가는 길은 전형적인 도시 근교를 생각하면 될거다. 적당한 집 적당한 공장 적당한 가게들.



버스에서 내려서 일단 아라시야마역을 가보기로 했다. 음식점도 골라놨는데 아직 오픈시간이 안돼서 간단히 역을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아라시야마에 들어오는 전철은 란덴嵐電인데[footnote]아라시야마嵐山에 가는 전철이라 란덴嵐電이다.[/footnote] 색깔이 참 예쁘다. 한큐전철도 그렇고 이런 색깔의 열차가 예뻐 보인다. 걸어오느라 지쳐서 그 사이 말차 아이스크림도 먹었는데 어머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사진은 하나만 찍었지만 이거 먹고 또 사먹고 아라시야마를 떠나기 전에도 하나 더 사먹었다. 아무래도 이쪽 지방이 말차로 유명하지만 이 나라 자체가 말차를 굉장히 좋아하는듯 싶다. 다른 사람들도 이거 먹어봐야 할텐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역내의 기념품점을 돌아다니다 바르는 향수도 좀 샀다. 그러던 사이에 밥 먹을 시간이 되었다.


三日月
食べログ

적당히 보여서 들어간 음식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아라시야마쪽은 두부가 유명하다고 들었던 거 같아 두부정식을 시켰다. 지금에 와선 메뉴 이름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아 진작에 썼어야 했어. 어찌됐든 그렇게 해서 나온 두부정식. 두부가, 맛있더라. 배고파서 그랬나? 아니 그보다 두부가 참 맛있었다. 일본은 숟가락을 안쓰니 두부를 어떻게 먹나 했더니 조그만 뜰채로 두부를 조금 떠내서 장에 넣었다가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거랬다. 우리나라 두부랑은 조금 맛이 다른 듯했는데 지금에 와선 기억이 나질 않고 ㅜㅜ 같이 나온 츠케모노들이 맛이 좋았던건 기억난다. 이전까진 일본 츠케모노는 좀 입에 안맞지 않나 싶었는데 이 식당에서 먹고 나서는 이후부터 좋아졌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츠케모노는 아주 맛있어 하지는 않더라. 입맛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이제 밥을 배불리 먹었으니 아라시야마의 유명한 치쿠린을 갈 차례다!

두부는 요렇게 요렇게

《맥주별장의 모험》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작품으로 탁쿠&타카치 시리즈 중 세번째 책이다. 안락의자 탐정물로 볼 수 있는데, 싱글 침대 하나와 수많은 캔맥주들만 있는 텅 빈 별장에 주인공 일행이 들리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일행이 네명씩이나 되다보니 대사량이 많지만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살펴보니 이 시리즈 중에서 총 네권이 번역돼 들어왔다. 작중에 두번 정도 언급되는 ’작년 여름의 사건’인 시리즈 전작 《그녀가 죽은 밤》도 읽고 싶어졌다.

장서목록을 바꾸고 싶었다. 그러나 후일을 기약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다가 최근에 구입한 두권의 책을 내 장서목록에 아직 집어넣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이럴 땐 기억나는대로 입력해줘야 잊지 않는다.

일단 아이폰의 엑셀 앱을 키고 원드라이브에 올려놓은 장서목록 파일을 연다. 최신 버전의 파일을 열기 위해 앱이 파일을 받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조금 걸린다. 다행히 마지막 행에 커서가 가있다. 책 제목과 저자명, 출판사명을 적고 파일을 닫아 저장한다.

물론 이게 어렵거나 그렇진 않다. 옛날 같았으면 엑셀 파일 하나 열려고 유료 서드파티 앱을 써야했겠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공식 앱을 잘 만들어준 덕에 기본적인 텍스트 입력만 하는 이 작업엔 어려움이 없다. 그치만 뭐든지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하고 싶은게 사람 마음 아닐까? 이것마저도 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오늘 내내 머리속을 가득 채운 생각이 있다. 책의 서지 정보를 마크다운 문법의 플레인 텍스트로 저장해두고 이들을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손쉽게 검색할 수 있고 새로운 책도 간편하게 입력할 수 있는 엑셀 장서목록을 대체할 데이터베이스.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 각 책의 서지 정보를 기록해둔다. 지금은 제목, 저자, 출판사만 적어두지만 그 외에 번역가라던가 필요하다면 목차도 적으면 좋겠다. sonnet님의 방식처럼 인용문을 기록해둬도 좋을 것 같다.
  • 마크다운 문법으로 적는다. 마크다운을 쓰는 건 내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 글도 마크다운으로 쓰고 있다. 마크다운에 대해서는 검색해 보면 좋은 글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 플레인 텍스트 파일로 저장한다. 플레인 텍스트는 플랫폼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앱으로도 열어보고 편집할 수 있다.
  • 손쉬운 검색. 파일명 뿐 아니라 내용까지 찾을 수 있어야 태그 기반의 검색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데스크탑에서도, 모바일에서도 검색하기 쉬워야 한다.
  • 간편한 입력. 이게 제일 중요하다. 요새 블로그에 올리는 영화글, 도서글은 아이폰에 구축한 자동화 워크플로우로 간편하게 입력한 것들이다. 글조차 이렇게 할 수 있는데 목록에 항목을 추가하는 건 더 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이 모든 생각의 시작이었다. 이에 대해선 추후 글을 쓸 것이다.

이런 조건을 만들기 까지 고려해봤던 것들이 태그 검색이 좋은 에버노트나 지금도 잘 쓰고 있는 원노트였다. 하지만 전자는 영 신뢰가 안가고 후자는 플레인 텍스트로의 백업이 어려워서 포기하면서 저 조건들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열심히 찾아보았다. 개인 위키도 고려해보고 드랍박스를 이용해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찾아보았는데 조건을 한두개씩 충족시키지 못하는데다가 영 마음에 딱 드는 방법이 없었다.

결국 기존에 하던대로 엑셀을 이용해서 목록만 작성해두기로 했다. 나중에 독립하고 그러면 그때가서 새 방법을 찾거나 해야겠다. 방법을 찾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길게 적고 있는가 하면 기록해두려고 그런다. 나중에라도 이걸 보고 시스템을 구축해야지. 이렇게 후일의 나에게 또 하나 일거리를 만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