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유람 001

첫날이다. 일정을 생각하면 첫날 같지도 않지만 그래도 출국일이다!
일본은 그렇게 중무장하고 가야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가볍게 챙겨가기로 했다. 그래도 돌아올 때 짐 생길 걸 생각해서 기내용 캐리어를 하나 챙겼다. 그러고보니 캐리어를 안찍었다. 캐리어는 뭐.. 적당히 옷들이나 화장품 등이 들었다.

해외여행 갈 때 왠지 이렇게 찍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일본에서 발권받는 피치항공의 항공권은 영수증 형식이라 이런 느낌을 받지 못한다. 들어가서는 저녁도 먹고 면세점도 들리고 공항 구경도 했다. 시간을 보니 우리가 탈 비행기 MM010편이 출발하기까지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다.

한참 남기는! 마음이 즐거우면 시간은 매정하게 순식간에 지나간다. 탑승시간에 맞춰 딱 도착해서 비행기에 맨처음 탑승해보는 경험도 했다. 한번 해보라. 마치 비행기 전세낸 기분이 든다.
일본은 바다 밖 제일 가까운 나라라 비행기에서 보내는 시간도 짧다. 도착도 금방! 바다 위에 세워진 간사이공항関西空港에 내렸다. 오늘 밤 우리의 숙소다.




제 1 터미널 2층 맥도날드가 우리의 숙소가 됐다. 숫자야구도 하고 빙고도 하다가 입이 출출해져서 로손에서 야키소바 컵라면인 UFO도 사먹고 호로요이도 사마시고 맥도날드에서 시켜 본 후렌치후라이가 무진장 짜다는 걸 발견하기도 하다가 잠들었다. 공사 소리에 자기 쉽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막상 눕고 보니 곧바로 잠에 빠지곤 네시간 뒤 정말 듣기 좋은 노래들만 골라놓은 아침방송 같은 무언가를 들으며 일어났다. 이왕 일찍 일어난거 교토에 일찍 가기로 했다.

매도할 신이 없는 인간

우리는 신을 매도할 수많은 이유를 이미 찾아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인은 일삼아 신을 매도할 만큼 전능하신 신을 믿고 있지 않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난쟁이의 독백侏儒の言葉》

일본학이나 일본인론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이 문장으로 떠오른 것이 있다. 전능한 신을 매도하므로 인간은 주체성을 갖게 되는데, 다시 말하면 외부의 존재를 대적하며 스스로를 키워나가는게 인간인데 이런 존재가 없는 일본인에게서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강한 수동성을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기독교의 세례를 받은 서양보다 더 인본주의적이었던 동양권이 오히려 인간의 주체성은 서양보다 덜한데(아니면 덜 갖게 됐는데) 그런 동양 안에서 특히 수동적인 — 혹은 시스템적인 일본인의 속성은 이런 것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중화권은 욕할 하늘이라도 있었는데 일본은….

《별의 계승자》

“오늘은 항성을, 내일은 은하계 밖 성운을, 우주의 어떤 힘도 우리를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천 단체커

2014.08.31 — 09.01

제임스 P. 호건이 쓴 하드SF소설을 읽었다.
이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이미 절판된 책인데다가 중고가는 2만원 3만원씩 해서 구입도 마땅치 않았는데 국가단위로 책을 빌려주는 책바다 서비스로 빌려 읽었다. 원래 한 건당 4,500원의 택배비를 내야하지만 경기도민은 도에서 지원금을 내주기 때문에 1,500원만 내면 된다.

그렇게 기대두근하며 읽었는데, 캬… 끝내준다.
달에서 5만 년 전에 죽은 우주인의 사체를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학자들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그려내며 인물이나 설정이 아닌 과학 자체를 주인공으로 세우는 소설이다. 오랜만에 SF를 읽으니 마음이 행복해질 수 밖에 없었다.
역시 나는 이 장르를 가장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