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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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고통이 자기 것인마냥 얼굴에 수심이 가득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표정’이라 이름 붙일 만한 그 얼굴들은, 내 주변의 특수한 경우이겠지만, 교회 공동체 안에서 비교적 더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심지어 나조차도 작년 제작년까지는 이런 표정을 지었던 것 같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 표정이 정말이지 끔찍하다고 느끼고 있다. 보기 싫다, 보기 안좋다가 아니라 그냥 끔찍하다. 마음의 어려움이 표정에 드러날 정도면 얼마나 어려운 상태일까 생각하게 되지만 그 표정을 통해 내 마음까지 힘들어지게 되니 불편해지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더라.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표정을 짓고 있더라. 그 얼굴을 보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다. 내가 저 인간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구나하고. 내가 싫어하는 저 인간과 다를게 없었구나. 아오 이거 쓰다가 그 얼굴들 떠오르니 좀 싫다.

그건 그렇고, 나는 그래서 그 후로 계속해서 표정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아무리 괴로워해봐야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더라고. 그렇게 세상 죄를 모두 지고 살아가봐야 깊은 밤에 혼자 괴로워하는 거랑 다를게 없더라고. 니체 선생님이 말씀하셨지, 밤에 고민고민열매를 섭취해봤자 되는 거 없으니 그럴 땐 잠이나 자는게 인생에 유익하다고 (당연하지만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 따라서 낮에 계속 잠만 잘 순 없잖아. 누구는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별로 아프고 싶지 않고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지만 흔들림에 흔들리는 사람이 되는 건 사양하겠다.

아직 나도 연습하고 있지만, 이런 얼굴을 하는 여러분은 얼굴 좀 피고 살자. 좀 걱정없는 것처럼 살아 보자.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어두움을 뿌리고 다니지 말자. 나를 사랑해줄지도 모를 사람을 힘들게 하지는 말자.

순전히 2014년 3월의 내가 생각했던 것을 쓰는 글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이 글에 신경쓸 이유는 없을 것이고 나조차도 이후에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냥 보고 잊으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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