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민의 작가, 토베 얀손에 대한 BBC 기사를 번역해봤다.
올해 핀란드는 토베 얀손(Tove Jansson)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다. 그녀는 무민(Moomins)의 창조자로 지금까지 가장 성공한 어린이 작품 작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녀의 삶은, 전쟁과 레즈비언 관계도 포함해, 무민에게서 놀라운 영향을 받았다.
무민 골짜기에는 작고 하얀 트롤인 무민트롤, 무민엄마, 무민아빠가 산다. 그곳엔 해티패트너, 밈블, 웜퍼처럼 다른 환상적인 생명체들도 살고 있다.
토베 얀손의 무민 책들은 수백만 권이 팔렸고 44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황금나침반을 쓴 필립 풀먼은 얀손이 천재라고 말한다. 많은 어린이 책들과 대표작 워호스를 쓴 마이클 모퍼고나 2012년 올림픽 개막식을 기획한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 같은 얀손의 팬들 역시 같은 생각이다.
“엄청나게 감동을 받고는 매료되어버렸죠,” 보이스는 10살에 리버풀 도서관에서 무민트롤의 책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게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는 건 몰랐습니다. 전 그녀가 핀란드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 핀란드는 나니아처럼 놀라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곳이었죠. 잔소리하는 헤물렌이나 비쩍 마른 필리용크들처럼 정말 이상하지만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캐릭터들 말이죠.”
토베 얀손은 헬싱키의 예술가 집안에서 자라났다. 스웨덴어를 쓰던 핀란드인 아버지는 조각가였고 스웨덴인 어머니는 화가였다.
어머니가 일하는 중엔 토베 얀손도 그 옆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곧 그림에 글을 적기 시작했고, 첫 작품인 “사라와 펠레와 물요정의 문어들”을 13살에 출판했다.
나중에 그녀는 자기가 무민을 처음 그린건 형제 중 한 명과 임마누엘 칸트에 대해 언쟁한 이후였다고 말했다. “상상할 수 있는 제일 못생긴 생물”을 화장실 벽에 그리곤 아래에 “칸트”라고 적었다고 한다. 이때의 못생긴 동물이, 좀 더 통통하고 다정한 모습을 한 이 동물이 후일 그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다.
얀손은 스톡홀름과 헬싱키, 그리고 파리와 로마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2차대전이 시작되기 직전에 헬싱키로 돌아온다.
얀손 가(家)와 20년 넘게 친구이며 스톡홀름 대학의 문학교수인 보엘 웨스틴의 말이다. “전쟁은 토베와 가족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형제 중 하나인 페르 올로프는 참전군인이었죠. 가족들은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안전한지, 아니면 돌아오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얀손의 첫 무민 책 “무민 가족과 대홍수”는 이런 신경을 파괴할 것 같이 힘든 시기가 끝난 1945년에 출간됐다. 그리고 곧이어 “무민 골짜기에 나타난 혜성”이 나왔다.
가족 (1942): 얀손의 형제들 – 제복을 입은 페르 올로프와 평상복의 라르스 – 은 체스를 두고 있고 얀손과 부모님은 침묵 속에 앉아있다. “분위기가 슬프죠. 토베는 미망인처럼 검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건 모습 그대로를 그린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을 그린 것이죠. 그녀에겐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보엘 웨스틴의 말이다.
“토베의 근심과 슬픔은 첫 두 작품에 새겨져 있습니다. 전쟁 중에 그녀는 매우 우울해했고 대재난에 대한 그 책들에 이 마음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어린이 책에서 대홍수에 대해 쓰는 것은 평범한 일은 아닙니다. 혜성 이야기에서, 무민트롤과 스니프는 혜성이 언제 오는지, 무민 골짜기로 오는 것인지 알아보려 여행을 떠나죠.”
“책을 보면 그 생명체들은 그들의 집을 떠납니다. 여기 헬싱키에서도 사람들은 폭격을 두려워하며 집을 떠났었죠. 얀손은 이 모습을 자신의 책에서 그려냈습니다.”
이 두 책은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었다. 얀손이 크게 주목 받기 시작한 건 1951년 그녀의 다음 책 “즐거운 무민 가족”이 영어로 번역되면서부터이다.
이 책에는 팅구미와 밥이 새롭게 등장한다. 둘은 토베 얀손과 기혼녀인 비비카 밴들러(Vivicka Bandler)를 상징한다. 둘은 짧지만 열정적인 연애 관계였다. 동성애는 당시 핀란드에서 불법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은 비밀이어야 했다.
“팅구미와 밥은 항상 함께 두 손을 잡고 다니죠. 여행가방을 갖고 있지만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내용물’이라고만 불리우죠.” 웨스틴의 말이다.
여행가방 안에는 토베와 비비카의 사랑을 나타내는 크고 아름다운 루비가 있다. 회색의 유령 같은 존재인 그로크는 만지는 모든 것들을 얼게 하는데 그녀 역시 사랑을 원하며 이 ‘내용물’을 얻고자 팅구미와 밥을 쫓아다니며 위협한다.
“여기서 토베와 비비카의 사랑을 읽을 수 있습니다. 둘은 자신들의 비밀스런 사랑을 여행가방에 담아두다가 가방을 열고 무민 골짜기에 보이는데, 이는 세상에 자신들의 사랑을 어떻게 보일지 묘사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죠.”
‘무민 가족’의 성공은 런던의 에이전트 찰스 서튼의 눈길을 끌어 런던의 석간지 ‘이브닝 뉴스’에 코믹 스트립을 연재하는 것을 괜찮은 조건에 제시했다. 얀손은 1954년부터 7년간 한 주에 6번 연재하게 된다.
이 성공으로 2년 안에 세계 각지의 120개 신문에 실렸고 1,200만의 독자를 얻게 되었다.
무민 매니아들의 전성기가 왔다. 무민과 연관된 프로젝트들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월트 디즈니는 ‘무민’이란 단어에 독점권을 갖고 싶어했으나 얀손이 거절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코믹 스트립은 얀손을 지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연재를 위해 새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필요로 했고 이 때문에 그림과 집필을 잠시 그만둔다. 그녀의 노트를 보자. “빌어먹을 무민들. 이제 그 놈들에 대해 듣고 싶지 않아. 무민트롤을 보면 토할 거 같아”
토베 얀손의 창작물이 그녀의 세계와, 그녀가 느끼기엔 그녀의 아티스트로서의 재능마저도 가리게 된 것이다. 토베는 무민트롤을 점점 크게 그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을 작아 보일 정도로 말이다. 그녀 마음 속의 불안이 투영된 결과였다.
1956년 파티장의 레코드 플레이어 옆에서 얀손은 동료 아티스트, 툴리키 피에틸라(Tuulikki Pietila)를 만났다. 얀손은 그녀에게 춤을 청했다. 투티라 불리우던 피에틸라는 관습을 깨고 싶지 않아 거절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어느 겨울 저녁, 얀손은 툴리키의 아파트를 찾아가 함께 와인을 마시며 음악을 들었다. 그들은 평생의 파트너가 되었다.
툴리키 피에틸라의 영향은 얀손의 다음 책에 드러난다. “무민 골짜기의 겨울”에서 그 흔적을 금방 찾을 수 있다.
“토베는 무민세계에 투티키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킵니다. 바로 툴리키 피에틸라죠.” 웨스틴의 말이다.
“투티키는 무민트롤에게 겨울과 힘든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그녀는 토베에게 정말 중요했던 것이죠. 이건 투티의 책입니다. 그녀를 위한 책이며 그녀에 대한 책이죠.”
무민들은 많은 시간을 물가에서, 보트 위에서, 섬에서 보낸다. 얀손의 가족 역시 핀란드 만의 무인도 클로우하루(Klovharu)에서 여름을 보내곤 했다.
토베의 조카인 소피아 얀손의 말이다. “토베의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와 툴리키도 그 섬에 여행갔습니다”
“그들은 보트를 타고 캠핑을 했어요. 무민 책들을 읽어보면 제게는 정말로 평범한 많은 일들이 쓰여있는데 다른 이들에겐 정말 이상한 일들로 보였나 봅니다. 하지만 핀란드 사람들은 섬에 가서 그렇게 지내고 그들도 그렇게 했죠.”
1964년 얀손과 툴리키 피에틸라는 클로우하루에 간소한 집을 지었다. 수도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집이었지만 그들은 여름을 여기서 보내며 방해 없이 작업할 수 있었다.
1970년이 되어 얀손은 마지막 무민 책인 “무민 골짜기의 11월”을 쓰기 시작한다. 어머니를 잃은 작가의 슬픔이 반영된 감성적인 이야기이다. 토프트라는 새 캐릭터가 나오는데 얀손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다. 토프트가 평소처럼 바쁜 무민의 집에 도착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일로 얀손은 이듬해에 피에틸라와 함께 세계여행을 떠난다. 이때 토베 얀손은 첫 성인 소설 “소피아의 섬”을 집필한다.
핀란드 만의 한 섬에서 여섯 살 소녀와 나이든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이 책은 얀손의 어머니와 그 손녀 소피아의 관계를 재구성한 것이다. 소설 속 소녀의 이름 역시 소피아이다.
소피아 얀손의 말이다. “읽으면서 그렇게 이상하진 않았어요. 얀손 가(家)의 사람은 허구와 진실이 조금은 뒤섞여 있거든요.”
“어느 게 진실이고 어느 게 아닌지 확신하기 힘들겠지만 그게 문제가 될까요? 이 책을 읽었을 때 전 그렇게 느꼈어요. 나한테 아주 가까운 이야기라고요. 제가 잘 아는 섬이 배경이고 제게 익숙한 것들이 많이 있고 말이죠. 이제는 정말 이게 나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어요.”
클로우하루에서 28번의 여름을 보내고 토베 얀손과 툴리키 피에틸라는 섬생활이 맞지 않는 70대가 되었다.
“토베는 바다를 무섭게 여기기 시작하면서 섬을 떠나야함을 깨달았어요. 그게 전환점이었죠. 자신이 나이 들고 약해졌다는 걸 알게 된거죠.” 소피아의 말이다.
“그들은 떠난 이후로 섬에 대해 말하거나 거기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지는 않았어요. 그 시절을 그저 마음에 담아두길 원했죠.”
토베 얀손은 2001년 여름, 87세에 세상을 떠났다. 툴리키 피에틸라는 8년 뒤에 그녀를 따라갔다.
1945년의 “무민가족과 대홍수” 이후 무민 책은 세계적으로 1,500만권 이상이 팔렸다.
오늘날 토베 얀손과 남동생이 세운 ‘무민 캐릭터즈’는 핀란드의 수익이 좋은 회사 중 하나이다. 헬싱키에 있는 사무실은 핀란드 만이 내려다보이는 가운데 귀여운 무민트롤들로 가득차 있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말이다.
대부분의 핀란드 가정은 무민과 관련된 것들이 있다. 타월이나, 아이들용의 접시나 어른들의 커피잔 같은 것들이다. 핀란드 국민의 삶에 무민의 위치는 그런 것이다. 수년 동안 핀란드의 우체국은 많은 무민 우표를 발행해 왔다. 1월에는 토베 얀손의 초상이 담긴 두 종류의 우표가 발행되었다.
얀손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는 핀란드를 넘어서 미국, 일본, 유럽 전역에서 열린다. 무민은 많은 나라에서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사랑 받고 있다.
프랭크 코프렐 보이스의 말이다. “저는 노동자 계급의 배경을 지니고 리버풀 교외의 저택에서 지내지만 어떨 땐 중산층 보헤미안인 별난 핀란드인 레즈비언이 저에게 직접 말하는 것 같습니다.”
“무민 책에서 얻은 것 중 하난 작은 기쁨들의 중요함입니다. 그저 서로를 위하고 정말 좋은 커피를 내리고 팬케이크들이 맛있다면 삶은 정말 가치 있다는 것이죠. 이만큼 중요한 어떤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참 멋진 메시지이지 않나요?”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민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재미있게 읽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