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험기간 중에 떠올린 생각을 기록합니다:
제가 여성신학을 보는 입장이 조금 변했습니다. 좀 다르게 말해야겠네요. 여성신학의 전개를 보며 기독교에 대한 전체적인 생각이 변하고 있습니다. 이 생각이 또 바뀔진 모르지만 기록은 소중하죠.
저는 우리의 신을 믿고 따르는 이 종교가 충분히 변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어찌되었든 신은 사랑이니까요. 인간이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얼마전부터는 다른 방향에서 보고 있습니다. 결국 이 종교는 고쳐 쓸 수 없는 것 아닐까 하고요. 아무리 신학을 고민하고 전개해도 경전은 시스젠더 남성만 인간으로 여기는데 말이죠. 우리가 하는 고민이란게 전혀 바뀌지 않는(그리고 바뀌지 않을) 경전에 새 해석을 가하는 것뿐이라면, 굳이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자기만족에서 끝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신앙 때문에 진짜 건드려야 할 건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인터넷에서 다시 찾지 못하고 있지만 어느 무슬림 페미니스트의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기는 누구보다 신을 사랑하는데 신이 주신 규율에서는 자신과 같은 여성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을 때 대체 어떡해야 하냐는 말이었습니다. 그 글을 읽었을 때도 아찔했지만 지금은 그 말에서 무슬림을 크리스천으로 바꿔도 가능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 아찔합니다. 많은 분들의 투쟁 덕분에 우리는 다행히 이웃 종교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대놓고 하고 있지 않을 뿐 비슷한 — 같은 사상이 이 종교 안에 깔려있지 않습니까? 대놓고 하기도 하죠. 부끄럼도 없이. 그리고 그 근거는 모두 어디에 있나요.
일상적으로 절 아는 지체들은 제가 가끔씩 얘기하던 걸 기억하겠죠. 교회가 무너지는게 기독교가 살 길이라는 말. 이건 그 지점에서 더 나아간 생각입니다. 교회는 문제가 맞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수정되지도 않는 경전에 있습니다.
물론 그 경전 덕분에 교회가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근세의 변혁은 계속해서 교회 밖에서 시작됐고, 교회는 텍스트에 묶여 그 끝자락에서야 겨우 뒤따라왔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경전 때문에 교회가 있어왔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단지 없어져야 했을 존재가 산소호흡기를 달고 그걸 애지중지해온 것은 아닐까요.
방금도 저는 버릇처럼 기도했습니다만, 제가 기도한 신이 저 경전이 말하는 신과 같은 신일까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