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선샤인〉 (2004)

처음으로 이거 꼭 봐야지 했던게 벌써 10년 전이다. 그걸 지난 주 블루레이 예약 구매를 받는 거에 앞서 급히 본 것이다. 영화의 이야기들, 화면들, 마음들이 정말 좋았기에 지금껏 왜 보지 않았을까 많이 자책했다. 왜 안봤니? 하지만 그때 봤다면 지금과 같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 너무 어렸으니까.

사랑에 대해서도, 상처에 대해서도 그 모든 것들이 우리를 ‘Nice’하게 해주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안고 있어야 따뜻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읽었다. 다시 보면 다른 느낌일까? 〈러브 레터〉와 함께 매년 볼 영화가 생긴 것 같다. 그건 1월에 다시 볼 거지만 이건 2월에 봐야지. 발렌타인 데이가 있으니까.

그리고 당연하지만 블루레이도 구매해뒀다.

2016년 8월의 시청각

이달은 적당히 읽고 적당히 보았다. 더 보고 읽을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한 걸 반성.

# 읽었다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http://joseph101.com/2016/08/3675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김세윤 지음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가지만 동시에 읽는 도중에도 가능한 반론들이 떠오르는 책
4월은 너의 거짓말 11 아라카와 나오시 지음
잘 만든 음악 만화가 얼마나 훌륭한지 환기시켜 준 작품. 오랜만에 깊이 빠져 보았다.
조선을 떠나며 이연식 지음
조선에 거주한 일본인들의 패전 직후의 사정을 알 수 있었지만 거기까지. 전후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데에서 끝나는 책
왕과 서커스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http://joseph101.com/2016/08/3677

# 보았다

러시아 방주 알렉산드르 소쿠로프, 2002
90분이 넘는 오로지 1개의 장면만으로 구성된 영화는 그 자체로서 매력이 넘친다.
스푹스 바라트 낼러리, 2015
동명의 영국 드라마의 극장판이라는데 드라마를 보지 않았어도 충분히 재밌게 보았다. 최첨단 기술들이 등장하는 첩보물이 아니어서 그런지 더 현장감을 느끼며 재밌게 본 작품
걸즈 앤 판처 극장판 미즈시마 츠토무, 2015
http://joseph101.com/2016/08/3687
스타 트렉 비욘드 저스틴 린, 2016
스타워즈와는 반대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를 가리키는 영화. 요크타운 입항 장면은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동경 이야기 오즈 야스지로, 1953
씁쓸함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영화. 명작은 괜히 명작이 아니다.
고스트버스터즈 폴 피그, 2016
오리지널을 본 이들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놀랍도록 신나고 재밌고 즐거운 영화

처음 도쿄 005

도쿄 여행은 말로만 듣던 곳들을 방문하게 되는 즐거움의 연속이다. 그래, 여기도 말로만 듣던 곳, 지유가오카이다. 확실히 강남에 있다가 상수역 온 것 마냥 분위기가 다르다. 역에서 나온 후 좀 더 분위기를 둘러볼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우린 배가 많이 고파서 일단 찾아뒀던 가게에 들어갔고 오무라이스와 폭신폭신 달걀 도리아를 주문했다. 메뉴 이름이다. 폭신폭신 달걀 도리아.

오무라이스는 친구가 시킨 것이다. 탱탱하다보니 귀엽게 흔들리기까지 한다.

난 폭신폭신 달걀 도리아를 주문했다. 맛은 어땠을까? 오무라이스는 오무라이스하면 떠오르는 그런 맛이라고 하고, 도리아는 도리아 하면 떠오르는 그 맛이다. 부족하지도 훌륭하지도 않은 생각대로의 그런 맛. 나중에 이 가게 후기를 보니 식사류는 평범하지만 홍차와 디저트류가 훌륭하다는 평이 많았다. 그래서 그랬구나. 어쩐지 맛이 기억에 남지도 않았더만. 가게 정보는 따로 적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갔다오고 얼마 안있어 폐점해버려서….

지유가오카는 걷는 길 모두가 예쁘다. 곳곳에 가게들이 많아서 친구는 옷도 사고 우산도 사고, 딱히 살게 없는 나는 예쁜 옷들과 우산들 구경하고, 걷다보니 프랑프랑도 발견해서 한참을 구경하고 쇼핑하고 그랬다. 일본 여행은 언제 어디서 돈을 쓰게 될지 모르겠어서 무섭다. 이 글을 쓰며 구글 지도를 들여다보는데 발견 못하고 지나쳐서 너무 다행인 곳들이 참 많다. 다음 여행에는 신용카드 잘 챙겨서 가야할지도 모르겠다.

길을 좀 더 올라가서 루피시아에 왔다.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디저트 가게들을 지나쳤다. 배부른 우리는 더 먹을 수가 없다는게 많이 아쉬워서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 어쨌든 루피시아. 친구 덕에 홍차의 매력을 알게 된 나는 여기서 많이 살 수 밖에 없었다. 일단 크리스마스 한정 차들을 샀고, 다구들을 샀다. 스타터 세트라고 해야할까 그런 느낌으로 한 세트 구매한 것이다. 여행 끝나고 지금까지 아주 잘 쓰고 있다. 지금 와서 후회하는 건 그때 호지차를 사오지 않은 것. 한국에 돌아와서 호지차가 정말 내 취향이란 걸 알게 됐으니 어쩔 수 없지만 많이 아쉽다.

점원과 이야기하면서 들어보니 일본 사람은 茶를 ‘차’라고만 발음하더라. 우린 왜 발음이 두개가 되었을까 괜히 궁금해지더라.

짠. 갑자기 왜 츠타야 서점일까? 지유가오카를 떠나 다이칸야마에 왔기 때문이다. 루피시아를 나오면서 슬슬 다리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여긴 둘 다 한번쯤 가보고 싶어했던 곳이라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가고 싶었어! 그리고 이 날 다이칸야마를 안가면 따로 갈 시간이 없을 거 같아서….

그래서 오게 된 츠타야 다이칸야마점.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는 그 곳이다. 정말 전통적인 서점과는 많이 달라서 구조나 분위기는 정말 좋다. 구석구석 의자도 많아 책 읽기도 좋고. 이런 컨셉이라면 우리나라에도 할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건 츠타야에서 느꼈던 생각이고 이후에 교보문고가 하는 걸 쭉 지켜보니 우리나라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다만 이 곳에 적잖이 실망한 점도 있는데 우리가 찾는 책이 단 한권도 없던 것이었다. 어쩜 이러니. 컨셉샵 같은 곳이니 전 분야의 책들을 모두 갖고 있지 않았을테니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마땅히 서점은 찾는 책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그 실망이 좀 컸다.

점심을 늦게 먹는 바람에 저녁 시간이 지났는데도 배고프다- 할 정도로 허기가 지지 않은 우리는 츠타야 구석에 앉아서 이제 어딜 갈까 들어가기 전에 뭐 먹어야 하지는 않을까 그냥 들어가면 밤에 배고프지 않을까 이런 얘기를 하다가 미스터 프렌들리에 가자 했고 갔다.

MR.FRIENDLY Cafe
http://www.mrfriendly.jp
食べログ

늦은 시간에 간 것이지만 다행히 라스트오더 이전에 도착했다. 가게엔 우리 밖에 없었고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고 마지막 주문이었다. 이제 와선 뭘 주문했는지도 모르겠다. 핫케이크 믹스세트는 확실한데 내가 시킨 음료는 유자소다이려나.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주문한게 나왔어도 문 닫을 때까지 시간이 꽤 남아서 천천히 오늘 산 것들 영수증 정리하며 앞으로 여행에서 쓸 돈이 얼마 남았는지 계산하며 (이거 필수) 체력을 충전했다.

가게는 미스터 프렌들리의 캐릭터들로 가득차 있었다. 저 표정 너무 좋지 않나? 참 사랑스럽다. 마구 사랑해주고 싶을 정도다.

이런 표정. 방금 소스를 찍어서 샴푸한 거 같은데 ‘유감입니다-’ 하는 듯한 이 표정이 정말 너무할 정도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