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것도 오랜만

오랜만이다. 사람 죽일수도 있는 더위가 끝도 없이 계속되더니 간만에 아주 간만에 걸어다닐 만한 날씨가 등장했다. 출근하면서 버스로 일터 앞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내려 걸어갔다. 위 골목은 그 걷는 길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길이다. 왠지 모르게 좋은 모습. 저 앞과 저 뒤는 별로인데 바로 저 부분만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도착한 일터는 시원해서 좋더라. 오늘이 바람 불어 선선했어도 여름은 여름이다.

저녁엔 만두를 먹으려고 했었다. 만두는 이름도 참 사랑스럽다. 하지만 가게는 열려 있는데 아무도 없어서 헛걸음을 하고 말았다. 만두 가게는 다음 기회에. 그래서 오는 길에 썩 예쁜 카페에 들어가 와플과 커피를 주문했다. 식사 대용으로 괜찮겠지 싶었고 실제로도 괜찮았다. 와플 먹으며 커피 마시며 책 읽은 괜찮은 저녁.

〈걸즈 앤 판처 극장판〉 (2015)

4DX로 보는 첫 영화를 이걸로 하고 싶어서 참고 기다리다가 상암에서 보게 됐다. 여의도에서 보고 싶었지만 예매를 놓쳤고 대신 상암에서 괜찮은 자리를 잡았다. 4DX 효과가 뛰어난 작품이라 기대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영화 자체는 드라마 파트만 빼면 괜찮고, 신나는 전차전을 만들려는 제작진의 즐거움이 보인다.

4DX를 보면 향기나 거품은 왜 있는지 모르겠고 바람 효과가 좀 거슬린다. 전투 중엔 괜찮지만 보통 장면에서 팬 돌아가는 소리에 사운드가 좀 묻힌다. 특히 안좋았던 건 연기 효과였다. 연기는 상영관 앞에서 나오는데 맨 앞 열에 앉아계신 분들이 대부분의 연기를 막아주시느라 고생하시고, 연기가 제때 안빠져서 한동안 스크린을 가리고 그림자를 만들기도 한다. 이정도만 빼면 가장 기본이자 제일 중요한 좌석 진동과 움직임은 영화에 몰입하기에 최적이었다. 다만 흔들림이 커서 의자에서 자꾸 흘러내리는 불편함이 있다.

왜 이 영화가 최고의 4DX 영화인지는 시작하자마자 알 수 있다. 이런 즐거움은 극장이 아니면 다시 보기 어렵겠지. 더운 날씨에 비싼 돈 주고 상암까지 갔다 온 보람이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왕과 서커스》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이다. 《안녕 요정》에 등장한 타치아라이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같은 캐릭터라 아무래도 《안녕 요정》의 기억이 떠올라 불안했지만 다행히 그렇지 않았다. 등장하는 인물들애 그의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었지만 다들 잘 배치돼있고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보다 훨씬 나은 마무리에 사건들과 전개도 흥미로와 아주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요네자와가 이런건 참 잘 쓴단 말이지. 최근 읽은 작품들이 만족스러워서 다음 작품들도 기다려진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난 요네자와의 작품들을 좋아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