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계약직이지만 3년째 도서관에서 일을 하다보니 바뀐 것이 책을 잘 사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취미는 책사기란 말은 못하겠다. 돈도 없고. 어쨌든 이런 변화는 특히 소설류에서 드러나는데 내가 원래부터 소설을 잘 사는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왠만한 경우 도서관측에서 잘 구매해놓기 때문에 더욱 살 이유가 없어졌다. 굳이 희망도서로 신청하지 않아도 정기도서구매 때 많이 비치해놓으니까.
그치만 그렇다고 책을 모두 안사게 된건 아니다. 전문서적들 같이 도서관에서 잘 구매하지 않는 책이나 정말 사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는 책들은 사고야 만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사람의 책이거나 내용이 아주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구매하기까지 못기다리겠는 책이거나. 아니면 사는 것 밖에 읽을 길이 없는 책들도 그렇다. 일본사 책이나 과학소설들이 특히 그렇다. 몇 해 전 1권만 사둔 특명전권대사 미구회람실기 역시 이런 책이다. 1권을 산 이후로 다음 권들을 안사고 있었더니 어느새 2권이 품절 상태가 되고 말았다. 알라딘의 품절도서센터를 이번에 처음 이용해봤는데 덕분에 신청한지 이틀만에 새 책을 구할 수 있었다. 이 분야의 책들은 품절이 곧 절판을 뜻하기 때문에 품절이 되기 전에 빨리 구해야 한다.
지금 읽는 건 요네자와 호노부의 《리커시블》 이다. 희망도서로 신청하고 보는건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작가인데도 이렇게 빌려보고 있다. 조금 전 이 책 겉표지를 보다가 떠올라서 이렇게 주절주절 쓰고 있다. 재밌는건 나 다음에 이 책을 보고 싶다고 예약하신 분의 이름이 익숙하단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빙과》를 읽을 때, 《안녕, 요정》을 읽을 때 내 뒤에 예약하거나 나보다 먼저 빌려보고 계시던 분이다. 이분도 요네자와씨의 소설을 좋아하시나보다. 그냥 이용만 할 땐 몰랐는데 내가 직접 대출처리하고 예약자 확인하니까 이런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어제 오늘은 예약해놨던 책 신청해놨던 책들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지금도 읽는 중인 책이 4권쯤 되는데 빌려가라고 알림 온게 6권쯤 된다. 예약은 다 다른 날에 했는데 책들이 한날에 들어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급히 읽어야 할 몇권만 빌리고 나머지는 예약응 취소해야겠다. 도서관이 구입했으니 어디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천천히 빌려봐야지.
일하며 딴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도망치면 안된다.
처음엔 기독교인이었다. 기복신앙을 쫓는 자들과 구별하기 위해 크리스천이란 이름으로 도망갔다. 그 다음엔 번영주의에 물든 자들과 구별한다고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으로 도망갔다. 그렇게 이름을 지키지 않은채 헛된 순수함만을 찾아 분열하는 동안 힘을 잃고 순수함도 잃었다.
작년 5월 즈음에 적어둔 글이다. ‘구별됨’을 잘못 사용할 때 어떻게 되는지 고민하다 떠오른 것으로 기억한다. 이 나라 기독교가 혐오를 내재한 요즈음, 스스로를 기독자라 부르기가 참담했다. 신의 이름으로 남을 죽이고 싶은 자들과 같은 이름표를 달아야 하다니.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일이니. 하지만 이젠 그 혐오가 싫다고 도망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도망쳐서 무엇이 남을까? 위의 생각처럼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도망치면 도망칠 수록 혐오자들만 남아 모든 기독교를 더럽힐 것이다. 그들은 신의 말씀을 입맛에 맛게 이용하며, 자신들이 판단의 주권을 가진듯이 말한다. 그렇게 놔둬서는 안된다. 이 종교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옛날에 행했던 너무나 큰 잘못들을 바로잡고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여호와와 예수의 말을 전하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지금도 모든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예전의 잘못들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된다. 복음이 다시는 살해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처음 도쿄 002
유락쵸에 가서 도쿄메트로 승차권을 사는데 하늘이 이렇게 맑았다. 아침 너무 일찍 나오긴 해서 빅카메라 오픈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이런 마트나 백화점 같은 곳에 오픈시간에 가본 적은 없었는데, 손님들 들어오니 다같이 고개 숙이며 인사하더라. 우린 후문으로 들어가서 인사하는 뒷모습들만 봤다. 긴자까지 가서도 할게 없으니 천천히 주변을 돌아다니다 마루이 백화점에도 갔다. 카렐 차펙의 팝업스토어가 있다고 해서 갔는데, 백화점은 이미 열었지만 팝업스토어는 한시간 뒤에나 연다고 써있어서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다.
참, 네이버 일본 여행 카페에서 봤던 어느 분의 후기엔 일본어를 모르지만 OIOI가 백화점인건 안다며 들어갔다는 글이 있었다. 그후로 마루이를 보면 자꾸 그 이야기가 떠오르더라. 잊을 수가 없어.


천천히 걸으며 긴자에 왔다. 아침인데도 관광객이 정말 많더라. 맨처음 앙빵 사러 키무라야를 찾는데 엥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걷다가 문구점 이토야를 발견해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의 두시간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토야는 어떤 곳인가? 그러니까 문구를 좋아하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파리지옥 같은 곳이다. 다만 목숨을 빼앗지는 않고 대신에 지갑을 빼앗아간다. 사실 나는 문구를 좋아하지만 쓰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뭐에 쓰겠나? 필기도 핸드폰으로 하는데. 하지만 원래 이런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쓰고 싶어서 사고 싶나? 사고 싶어서 사고 싶어지지. 그래서 엄청 고민과 고민과 고민을 한 끝에 다가올 크리스마스에 쓸 카드집을 사고, 어디에도 쓸데 없는 편지 봉인용 초와 스탬프를 사고야 말았다. 크리스마스 카드야 다음달에 바로 썼지만 스탬프는….

긴자에 왔으면 시계탑을 찍어야지! 아까 키무라야를 찾고 있었다 했는데 여행 다 끝나고 돌아와서 보니 저 시계탑 바로 옆이었다. 사진에도 나와있는데 시계탑 우측 하단 신호등 뒤에 바로 キムラヤパン이라고 간판이 세워져있다. 하, 앙빵을 만든 곳을 너무 허무하게 놓치고 만 것이다. 저 앞을 네번이나 다녔는데 말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이제 점심시간이었다. 이날 우리가 긴자에 온 건 마리아쥬 프레르에서 애프터눈티를 즐기기 위함이었다.

http://www.mariagefreres.co.jp/
食べログ
마리아쥬 프레르는 프랑스의 홍차 브랜드다. 한국엔 입점해있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긴자에까지 오게 됐다. 애프터눈티는 11시 30분부터 19시 30분까지 주문이 가능하다. 메뉴를 주문하면 홍차도 하나 선택할 수 있고, 다 먹고 난 뒤에는 케이크도 한 조각 먹을 수 있다.
나는 미니 크로크무슈와 샐러드, 샌드위치가 나오는 것을, 친구는 훈제연어 크로크무슈를 주문했다. 각 2,150엔. 아마 이번 여행에서 가장 비싼 식사였을 것이다.

먼저 홍차를 고르는데 난 마리아쥬 프레르의 홍차를 잘 모르니까 친구와 직원에게 물어가며 ‘볼레로’를, 친구는 ‘마르코 폴로’를 골랐다. 알고보니 마르코 폴로는 마리아쥬 프레르의 잘나가는 홍차였다. 내가 시킨 볼레로도 향이 좋았다. 크.

주문한 것들이 나오기까진 시간이 걸리니 그 사이에 티팟에 비친 날 보며 사진도 찍고 그랬다. 이때가 평일 점심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점심시간에 여길 오는건가? 우리 옆엔 여성분 넷이 와서 식사를 하던데 우리 보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더라. 다 알아들어요….

내가 고른 ‘향수鄕愁의 퐁디셰리’. 미니 크로크무슈가 어휴 맛 좋더라. 이걸 먹고 나니 친구따라 크로크무슈 시킬 걸 싶었다. 느긋하게 홍차를 마시고, 맛있는 것을 먹고,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 여행 이틀치에 벌써 정점을 찍은 듯해서 즐거웠다. 혼자하는 여행도 재밌지만 치ㄴ한 친구와 같이 여행하는 것도 이렇게 좋구나 싶었다.
식사가 끝나면 케이크를 고를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저 케이크들이 어떤 것들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케이크는 평범했다.
긴자본점 1층은 홍차를 파는 매장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여기서 홍차 하나쯤 사야지 않겠냐는 생각과 친구의 부추김으로 100g들이 틴으로 하나 구매했다. 처음에 뭘 고를지, 무난하게 아까 친구가 마신 마르코 폴로를 살까 했는데 추천하는 홍차가 무엇인지 점원에게 물었다가 마침 들어온 신상이라며 향을 맡게 해준 ‘파리 상하이’를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말았다. 3,780엔. 비싸보이지만 직접 향을 맡아보면 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게
이번 여행에서 개별 상품으로는 가장 고가의 구매로 남았다. 제일 좋은 식사, 제일 비싼 지름을 하게 되다니 역시 긴자는 무서운 곳이로구나.